‘쥐덫’이라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유명한 연극이 있다. 배경은 폭설에 갇힌 몽스웰 여관이다. 이곳에는 네 명의 손님과 주인 부부, 그리고 한 명의 형사가 갇혀 있다. 이 갇힌 공간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라디오에서 발표된 살인 용의자는 여관의 남자 주인과 인상착의가 비슷하다. 스키를 타고 찾아온 형사의 예측대로 또 한 명의 여자가 여관에서 살해되고 연극은 제3의 피해자가 누구일까에 대한 긴장감으로 뒤덮인다. 그런데 사건은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해법으로 종결된다. 바로 집요하게 사람들을 범인으로 추궁하던 형사가 진범으로 밝혀지고, 손님으로 등장해 사건의 용의자로 끊임없이 의심받던 신사가 형사로 밝혀지는 것이다.
‘쥐덫’은 현실의 많은 문제에 교훈을 던져준다. 현실은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게 해석되는 것은 아니며, 현실의 등장인물 중 누구를 의심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누가 이득을 얻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리니지2’에 대한 청소년 유해물 판정과 이에 따른 논란도 바로 출연배우들의 이해 관계를 잘 관찰해야만 하는 문제다. 리니지2 판정에서 등장하고 있는 배우는 3명이다. 윤리위와 영등위, 엔씨소프트다. 핵심 쟁점은 영등위와 윤리위에 의한 이중규제다.
일부 비판자들은 영등위에 의한 사전심의와 윤리위에 의한 사후심의라는 두 번의 심의는 부당하며 하나로 통합, 정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언뜻 윤리위를 비판하는 듯이 들리는 이런 주장은 ‘진범’을 놓치고 있다. 즉 그렇다면 한번의 심의는 바람직한 것인가, 영등위와 윤리위가 통합된 심의기구나 영등위에 의한 한번의 심의는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문제다. 궁극적으로 게임은 중립적이고 공정한 민간 심의기관에 의해 심의를 받는 형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관점에서 볼 때 문제의 핵심이 ‘영등위가 바람직한가, 윤리위가 바람직한가’ 또는 ‘영등위와 윤리위의 통합이 바람직한가’의 논의로 빠지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정통부와 문화부라는 두 기관의 권력투쟁의 산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물론 두 기관이 과열 경쟁을 하고 있으며, 이는 상당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현재 문화부는 영등위를, 정통부는 윤리위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영등위와 윤리위를 움직이고 있는 숨은 ‘배역’은 학부모단체와 같은 시민단체와 사회여론이다. 이들이 객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주역인 것이다. 이런 시민단체와 학부모들이 납득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리니지2 유해 매체물 판결’과 같은 파동은 계속될 것이다.
또 이번 사태의 ‘피해자’로 배역을 맡은 엔씨소프트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엔씨소프트는 청소년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받았음에도 과연 가슴깊이 받아들였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또 왜 많은 게임사들이 엔씨소프트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함께 행동하기를 주저하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경영전략론에서 사용하는 용어에 ‘파이어 파이팅 (불끄기)’이라는 단어가 있다. 기업이 주도면밀한 전략 없이 급한 사안이 생기면 이리 뛰고 저리 뛰지만 결국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는 경우를 지칭한다. 2년전 리니지의 PK 문제를 둘러싼 파동이 있었을 때 그리고 지난해 리니지2가 영등위로부터 18세 이용가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엔씨소프트는 파이어 파이팅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쥐덫’에서는 결국 누가 형사이고 누가 범인인지 판가름나고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극장문을 나선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대안이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가를 판단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그런 판단이 가능할 때는 더 손을 쓸 수 없이 상황이 종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의 문제에서 본질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 jhwi@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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