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통신산업의 ’위기’

 요즘 들어 통신산업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나라 구석 구석까지 인터넷과 휴대폰이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상황에서 뜬금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이동통신 가입자 3500만명, 초고속 인터넷사용률 세계 1위라는 수식어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위기의 조짐은 쉽게 발견된다.

 지난 해부터 통신시장에 나타난 두드러진 현상은 양적 팽창의 멈춤이다. 2001년 17.5%, 2002년 16.6%로 두자릿수 성장을 이어갔던 국내 기간통신산업 매출성장률은 지난해 1% 밑으로 추락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통신기업인 KT가 사상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한때 국내 정보기술(IT) 사관학교로 불렸던 데이콤과 초고속인터넷 신화의 주역이었던 하나로통신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지난 2년간 두자릿수 고속성장을 거듭했던 SK텔레콤도 올핸 7% 남짓한 성장목표를 설정해 시장 전반의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외부상황도 악재투성이다. 일본이 차세대 인터넷환경으로 꼽히는 IPv6에서 우리를 제치고 있고 광선로망 구축에선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약진중이다. 그간 우리의 자랑거리였던 IT인프라강국의 면모도 올해를 기점으로 간판을 내려야 할 판이다.

 현재 직면한 난국은 우리의 통신산업이 철저하게 내수의존으로 성장해온 탓이 크다. 기존 서비스들의 포화상태를 타개할 만한 신산업 발굴이 없는 한 예고된 결과다. 통신산업은 국민에겐 양질의 서비스를, 사업자에는 수익을, 국가적으로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수단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업자는 그동안 투자비 회수에 급급해 신규서비스 발굴을 위한 투자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또 정책은 시장과 유리된 기업발목잡기로 일관해 결국 이런 통신산업 선순환의 고리를 찾는 데 실패했다.

 많은 이들이 통신산업의 위기를 거론한 데에는 국가 경제의 성장엔진이 꺼질지도 모른다는 본질적인 위기감이 깔려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통신산업은 CDMA 신화와 초고속인터넷 강국으로 상징되는 ‘IT코리아’의 주역이다. 지난 90년대말 인터넷PC방 붐과 폭발적인 휴대폰 보급속도를 빗대 통신산업이 IMF 관리체제를 탈출시킨 견인차라고 추켜세워지는 것도 과장은 아니다. 당시 침체됐던 국내 경제에 새로운 통신서비스를 도입함으로써 장비·단말기·솔루션·콘텐츠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많은 벤처기업들이 탄생했다. 이는 곧 생산·고용 측면에서 엄청난 전후방 파급효과를 불러왔던 것이다. 최근 불거진 통신산업의 성장정체가 IT경기침체, 나아가 국내경제 전반에 미칠 악영향이 크다는 우려는 이런 이유에서다.

 다행히도 지금 통신업계에서는 성장정체의 장벽을 뛰어넘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이 모색중이다. 내수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위해 본격적인 해외시장 진출이 시도되는가 하면, 방송·금융·유무선 등 이른바 컨버전스(업종간 융복합) 서비스도 가장 앞서 추진되고 있다. 앞으로 5년, 10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현재 활로를 뚫고 있는 해외시장 진출이나 컨버전스 산업은 아마 우리나라 통신산업의 미래 발전상이자, 국내 IT경제의 돌파구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업종간 진입장벽이 여전한 현행 법·제도상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일은 정부의 몫이다. 통신사업자들도 제한된 내수시장에서 미래의 수종사업에 대한 투자는 도외시한 채 서로 땅뺏기에만 급급해서는 모두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

 국가 경제나 기업의 생존 모든 면에서 신성장엔진을 발굴하는 것보다 지상과제는 있을 수 없다. 통신산업의 활력은 곧 국내 IT산업의 희망이자, IT코리아의 미래다.

<김경묵 부국장대우·IT산업부장 km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