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동부 보스턴 지역의 국제 통합 마케팅 기업에서 해외 IT·바이오텍 기업들의 국제 마케팅 관련 업무를 지휘하던 1998년 즈음의 일이다. 미국에 법인을 두고 있는 어느 한국 기업은 당시 준비 중이던 해외 전시회 업무 및 국제 마케팅·PR 등 해외 활동을 일임해왔다. 그로부터 3년여간 그 기업을 위해 국내에는 생소한 기술 AR(Analyst Relations) 등 업무를 중심으로 해외 마케팅·PR업무를 진행했다.
이런 업무 진행 때마다 느끼는 것은 국내 기업들이 해외 마케팅 구조와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시장에 진출한다는 점이다. 우리와 언어·문화·사고 방식이 다른데 시장 구조나 비즈니스 생리가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럼 현지화란 무엇인가. 기존에 국내 기업환경에 익숙해져 있는 습관을 그대로 갖고 해외 진출을 꾀한다면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 반대로 외국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기업이 한국 시장에 적응하지 못한 채 쓰러져 돌아가는 사례도 많지 않은가. 국내 기업이 해외 시장을 겨냥할 때도 마찬가지다. 현지 시장을 전혀 모르는 경영인이 현지 시장 원리나 그에 대한 이해 없이 기존 방법을 고수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국제 전시회에 참가하려는 국내 기업들은 물론 크고 작은 해외 전시회나 로드 쇼를 주관하는 정부기관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시장 구조와 그 시장을 움직이는 마케팅 테크닉의 원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일반 소비자들에게 빠르게 접근하는 노하우는 무엇인지, 기술 시장과 그 시장의 현지 바이어를 움직이는 ‘리더’가 누구인지 파악해야 한다. 또 그들의 역할과 영역은 어디까지 인지, 그 리더들을 움직이는 리더가 되기 위한 테크닉을 습득해야 한다. 해외 기업들이 기술 애널리스트사와 전문적인 교류에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들이는 상황도 연구해야 한다.
사람들은 종종 세계 전시장에서 왜 국내 기업 부스는 다른 해외 기업들의 부스만큼 분주하지 못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한국 기업인들은 전시회 문이 열리는 그 순간부터가 비즈니스의 시작인 줄 아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전시회 시작 전에 이미 65% 이상 주요 방문객의 행로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들의 부스를 방문하게 될 주요 고객들의 명단을 확보하지 않고 막연히 전시회에 참여한다. 한번쯤 되돌아 보기를 당부한다. 또 가장 중요한 사항은 주요 고객 명단에 시장을 움직이는 리더들이 과연 얼마나 많이 포함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 95를 처음 시장에 출범시키던 1995년. 제품에 대한 단 한편의 광고도 없었지만 99%의 미국 시민은 이미 그 제품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미 사람들은 윈도 95에 대해 ‘더욱 손쉽고, 신속하며 흥미로운 컴퓨팅계의 이정표이며 반드시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소프트웨어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이런 배경에 힘입어 MS는 윈도 95의 첫 카피를 출시한 지 두 달 만에 1억 달러를 넘게 판매하는 매출을 기록했다. 그 후 1년이 지나서까지 최고 판매 소프트웨어라는 명예를 유지했다.
그렇다면, 이런 결과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것은 바로 ‘메인스트림의 마케팅 테크닉’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MS의 성공은 분명 시장과 미디어의 생리 및 구조는 물론 애널리스트와 미디어를 움직이는 노하우에 대한 경영 방법을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윈도 95 출시 전 20개월간에 걸쳐 전략적인 캠페인을 벌여 승리한 것이다.
국내 기업이 미국, 유럽 등의 해외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이들 시장의 구조와 생리에 대해 보다 철저히 연구해 이에 맞는 전략과 마케팅 테크닉을 구사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매번 되풀이되는 국내 기업들의 현지 진출 실패를 이제는 막아야 한다.
메인스트림 마케팅 기술을 철저히 분석한 국내 기업들을 국제 시장에서 보다 많이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임수지 IMLee그룹 부사장 Suzy_I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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