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대통령에게 `막 가는` 스팸

 가뜩이나 밝은 뉴스가 없어 우울하기만 했던 갑신년 벽두는 어디선가 날아온 한통의 스팸메일로 더욱 지저분하게 얼룩지고 말았다.

 문제의 스팸은 지난 1일 오후 네티즌 일부에게 발송됐다. 발신자 이름은 ‘노무현’, 제목은 ‘보다 나은 2004년을 맞으시길’. 영락없는 노 대통령의 신년인사 편지다. 그러나 겉모양새는 노 대통령의 신년인사 e메일을 패러디했지만 내용은 달랐다. ‘69*’라는 포르노 사이트에서 보낸 낯 뜨거운 음란물 광고메일이었던 것이다.

 사실 친구나 가족이 보낸 것처럼 제목 등을 가장한 음란물 광고메일의 폭주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도가 지나쳤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고위공직자를 우스개거리로 만드는 유머가 통용되는 서구의 경우라 하더라도 이 정도면 허용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솔직히 신년벽두부터 대통령에게 신년인사 메일을 받은 네티즌은 순간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국정으로 바쁠 대통령이 뭐 이런 것까지 하면서도 한편으론 수천만 국민 중 한 사람에 불과한 나에게까지 이렇게 신경을 써주다니 하며 고마운 마음에 메일을 열어보지 않았을까. 일부에서는 내용을 열어보기도 전에 흥분한 나머지 옆자리 동료에게 대통령한테 편지가 왔다며 자랑을 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결코 가볍게 논해질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노 대통령이 ‘이러다간 대통령을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말했을 때 언론과 야당 및 국민들이 분노했던 것도 바로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대해 우리 국민이 가진 특별한 경외감을 반증한다.

 혹자는 ‘기자양반, 유머감각 좀 가지시지’라고 힐난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도 대통령은 음란 스팸메일에 동원될 성질의 범주는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음란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그만뒀으면 싶다. 아무리 대통령의 인기가 땅에 떨어졌다 해도 대통령은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이 아닌가.

 포르노사이트 운영자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테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묻고 싶다. 당신도 국민의 한 사람이지 않느냐고.

 <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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