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 서울에서는 인터넷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국제기구 회의가 열린다. 전세계 인터넷표준을 결정하는 국제기구인 IETF(Internet Engineering Task Force http://www.ietf.org) 제59차 회의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지난 해 8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57차 회의에 이어 두번째다. 한국이 인터넷 분야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감안할 때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IETF는 지난 1994년 31차 회의를 기점으로 참가자수가 1000명을 넘어서면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인터넷표준화기구로 우뚝 올라섰다. 현재 1년에 3회(일반적으로 3, 7, 11월) 열리는 회의에 매번 30개 국가, 250여개 기업에서 1500∼ 2000여명이 참가한다. 인터넷 기술의 표준화 과정에 참여하고 세계적인 기술표준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특히 지난 90년대 후반부터 일본을 필두로 아시아 국가들의 관심과 참여가 급격히 높아져 현재 참가자수면에서 일본과 한국이 미국에 이어 각각 2, 3위를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아직도 IETF는 여전히 미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현재까지 채택된 표준문서(RFC: Requests For Comments) 3500여개의 대부분은 미국인이 저자다. 5년여 전부터 아시아 및 타 지역 참가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표준화활동은 미미한 실정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제안해 채택된 표준문서는 단 2개에 불과하다.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표준을 장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표준화활동은 미미하면서 참가자수만 수위를 다투고 있다는 점은 인터넷강국이라는 명성을 무색하게 하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들어 IETF의 문호가 각국에 개방되는 추세이고 운영과정이 상당히 민주적이라는 점을 잘 이용한다면 우리에게 기회가 적지 않다고 본다.
IETF에서는 8개 영역(Application, Internet, General, Operation and Management, Routing, Security, Sub-IP, Transport)의 인터넷기술조정그룹(IESG: Internet Engineering Steering Group) 산하 130여개 워킹그룹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표준화활동 거의 전부가 e메일로 이뤄지기 때문에 지역적인 갭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정해진 양식의 인터넷문서(I-D: Internet Draft)를 작성해 IETF 사무국에 e메일로 제출하면 각 워킹그룹 회원들간에 e메일을 지속적으로 주고받아 수정, 보완을 거친 다음 인터넷기술조정그룹의 검토를 통해 최종 표준문서인 RFC로 선정되므로 적극적인 참여가 표준채택의 성패를 가름하는 가장 큰 열쇠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 응용 기술면에서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오지 못할 기술적 성숙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유무선 및 위성 등을 포괄하는 전국적 규모의 최첨단 테스트베드를 갖춤으로써 개발된 기술의 실용화 속도도 그 어느 나라보다 높다. 시장에서 인정받아 표준으로 자리잡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그동안의 과정을 볼 때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만 적용가능한 국내표준이 되곤 했다.
인터넷 강국으로서 국제적인 위상을 갖추기 위해서는 국제무대로 나가서 기술을 선도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만든 표준을 따라가기에 급급해서는 결코 시장을 선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년 서울회의 개최를 계기로 더 많은 기업과 연구기관들이 IETF라는 국제무대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닫기 바란다.
◆박수홍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연구소 선임연구원 soohong.park@sam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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