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영남 여성벤처협회장(4)

 여성CEO가 운영하는 기업일수록 기술로 실력을 입증받아야 한다.

 창업초기 서현전자는 주로 아날로그 타입의 산업계측기인 소형멀티메타를 생산하고 있었다. 당시 계측기 시장의 70∼80%는 외국산 수입제품으로 품질보다는 해외브랜드라면 무조건 믿어주고 선호하는 편견이 팽배했다. 브랜드에 취약한 우리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은 오로지 기술력을 갖추는 길 뿐이었다. 무엇보다 집중화와 고객 요구에 따른 기술력 향상에 심혈을 기울였다.

 처음부터 철저하게 고객요구에 맞춘 제품을 설계하고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때까지 디자인의 평가, 성능시험, 초도 생산제품 시험 등을 만들어가면서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고의 품질을 위해 온도, 습도, 충격시험 등을 실제조건하에서 검사토록 했을 뿐만 아니라 판매 후의 AS를 한층 강화했다.

 이같은 전 직원의 품질관리 노력으로 수입산 위주의 시장에 국산화를 성공시켰지만 중국시장에서 저가의 제품들이 다량출시되면서 다시 적신호가 울렸다. 제품의 다각화와 함께 디지털제품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보다 한단계 높은 기술경쟁력 확보가 절실했다.

 나의 열망이 하늘에 닿았던 모양이었다. 당시 서현전자의 주거래처 중 하나였던 LG정밀로부터 범용계측기 사업을 인수하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그 무렵 한참 고민 중이었던 ‘짧은 시간 내에 한 단계 기술경쟁력을 점프하는 일’ 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99년 당시 LG정밀의 범용계측기 사업은 디지털기술과 인력을 필요로 했던 서현전자에 꼭 들어맞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상호 부족한 점은 보완되고 강점을 계속 강화, 발전시킬 수 있는 긍정적 조건이었다. 단 한가지 문제는 자금이었다. 대개의 중소기업이 그러하듯 서현전자 역시 넉넉한 가용자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인수와 투자유치를 동시에 진행키로 결정했다. 유리한 조건의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합병이 순조로워야 했다. 하루가 긴박했다. 나는 한명의 인재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LG 정밀의 범용계측기 사업소속 직원들에게 양사의 인수의 이점에 대해 설득하고 대기업 소속이었다가 중소기업에 가는 일이 그리 수용하기 쉬운 결정은 아닐 것임을 전제로 1, 2, 3안을 제시해가며 서울과 구미를 왕복하는 설득작업에 나섰다. 그 동안 고객과 거래처의 관계로 나와 신뢰가 쌓인 기술직 팀장급 직원들이 먼저 협조하고 나섰다.

 이해 10월 LG정밀측과 범용계측기 사업 양도양수계약을 체결했다. 이틀 후에는 1200만달러의 외화를 유치하면서 서현전자는 한 단계 도약했다. 사명도 이지디지털(주)로 개명했다. LG 정밀과의 양도양수계약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며 눈길을 모았다. 바야흐로 이지디지털의 세계 계측기 시장 석권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는 희망찬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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