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찬규 인터피온반도체 사장 ceo@interpionsemi.com
반도체산업은 흔히 장치산업이라는 말로 불린다.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대규모의 투자가 필요하고 투자 원금을 회수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는 뜻이다.
일견 틀린 생각은 아니다. 대만의 UMC와 TSMC는 80년 후반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뒤 10년이나 지나서야 경쟁력을 갖기 시작했고 중국의 지방정부들은 육성산업으로 반도체를 정한 뒤 앞다퉈 자금을 퍼붓는 상황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치산업은 끊임없이 최첨단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투자를 해야 하고 투자비가 채 회수되기도 전에 다시 신규 설비투자를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반도체 설계 없이 단순한 파운드리(주문자가 설계한 웨이퍼 생산을 대행해주는)사업을 위주로 하는 회사는 자사가 보유한 장비가 노후화되는 순간 경쟁력을 잃는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0.13∼0.15미크론(㎛)급 공정이 보편화되는 현재에 0.5㎛급의 장비를 가지고 파운드리사업을 한다면 아무도 그 공정을 높은 가격에 이용하는 고객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0.13㎛ 공정이 보편화됐다면 이들은 0.09∼0.10㎛급 공정을 위해 주요 장비를 미리 준비해야만 경쟁력을 잃지 않게 된다.
‘얼마만큼 작은 소자를 구현할 수 있는가?’가 생산장비에 의존한 것이라면 ‘어떠한 기능을 하는 반도체를 몇개의 소자를 사용하여 구현할 것인가?’는 설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를 컴퓨터에 비유한다면 생산장비는 하드웨어이고 반도체 설계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성능을 가진 슈퍼컴퓨터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소프트웨어에 따라 똑같은 결과를 더 늦게 얻을 수도 있다.
기가(㎓)급 속도에 사용하는 무선 반도체칩은 적어도 0.3㎛ 이내의 고가 공정에서만 구현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떤 획기적인 아이디어에 의해 0.7㎛ 혹은 그 이상의 저가 공정에서 구현될 수 있다면 엄청난 가격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이 틀림없다. 또한 수백만게이트를 사용해야 하는 디지털 반도체를 획기적인 알고리듬의 개발에 의해 수십만게이트로 줄일 수 있다면 당연히 칩당 생산원가는 몇분의 일로 줄어들 것이다.
이처럼 반도체 설계사업은 장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반도체사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사업을 영위하는 반도체기업을 팹리스(FABless) 반도체업체라 하고 실리콘밸리의 대다수 업체들이 이런 형태다. 이들은 TSMC나 UMC처럼 파운드리사업을 위주로 하는 회사에 의뢰해 생산된 제품을 판매하는 사업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이 사업은 우수한 엔지니어가 가장 중요한 자원이고 우수한 인력에 대한 투자가 가장 중요하다. 결국 개발속도가 그 제품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다변화·다각화되는 전자제품시장에서, 기획에서 설계·양산까지의 간단하고 신속한 의사결정구조를 가진 벤처기업에서 설계되는 제품이 시장을 석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 강국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진입장벽과 국내 전자업체들이 사용을 꺼리는 외면속에 성공한 반도체 벤처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실리콘밸리의 명성 뒤에는 마치 골드러시와 같이 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연구와 연구에 몰두했던 붐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코스닥시장 폭락과 함께 같이 떨어진 벤처의 꿈과 우수한 인재들이 공대를 기피한다는 서글픈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나라의 미래산업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기술로 승부하는 올바른 벤처문화와 그 기업의 성공신화가 살아 숨쉬는 기업환경을 만들어야 하고 그런 환경은 기술강국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될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오피니언 많이 본 뉴스
-
1
[ET단상] 다양한 OS환경 고려한 제로 트러스트가 필요한 이유
-
2
[ET시론]AI 인프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해자(垓子)를 쌓아라
-
3
[보안칼럼]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개인정보 보호와 관리 방안
-
4
[기고] 딥시크의 경고…혁신·생태계·인재 부족한 韓
-
5
[ET시론]2050 탄소중립: 탄녹위 2기의 도전과 과제
-
6
[ET단상]국가경쟁력 혁신, 대학연구소 활성화에 달려있다
-
7
[콘텐츠칼럼]게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수립 및 지원 방안
-
8
[김종면의 K브랜드 집중탐구] 〈32〉락앤락, 생활의 혁신을 선물한 세계 최초의 발명품
-
9
[ET시론]양자혁명, 우리가 대비해야 할 미래 기술
-
10
[디지털문서 인사이트] 문서기반 데이터는 인공지능 시대의 마중물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