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벤처의 적정 가치평가

 ◆곽성신 우리기술투자사장 kwakss@wooricapital.co.kr

 

 지금 식품점과 슈퍼마켓 등에서 사용되고 있는 전자저울이 초기에는 보급에 어려움이 많았다. 많은 벤처기업들이 전자저울 제조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해 폐업하는 운명을 맞았고 오직 C사만이 온갖 어려움 끝에 사업을 성공시켰다.

 전자저울 산업의 사업성을 검토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점은 이미 보급된 기계식 저울에 비해 가격이 10배 정도 비싸다는 것과 수요자, 특히 정육점을 경영하는 상인들의 저항이었다. 당시만 해도 기계식 저울은 눈금이 정확하지 않고 조작이 쉬워서 소위 ‘눈금속이기’가 성행하던 때였다.

 이런 시장관행 때문에 소비자가 직접 눈금을 확인할 수 있는 전자저울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했다. 예상대로 전자저울은 상인들의 거센 저항 때문에 시장침투에 어려움이 컸고 초기에 뛰어든 벤처기업들이 도산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전자저울을 사용하는 식품점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쌓이고 사용에 편리하다는 점 때문에 이를 도입하는 상인들이 늘어나자 C사는 해외시장까지 뻗어나가는 우량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지난 99년 이후 급성장한 코스닥 시장은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통 세계적인 IT 경기침체·주가조작·내부자거래 등 불공정행위, 등록주식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등을 그 이유로 꼽는다. 그러나 많은 부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코스닥 시장의 형성 초기에 정확한 저울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기업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이 뚜렷히 제시되지 않았고 신기술과 신사업에 대한 막연한 기대 때문에 벤처기업의 가치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나치게 높게 평가됐다.

 인터넷 서비스 기업들은 보통 회원 한명당 가치가 기업가치로 평가되는게 관행인데 이 경우도 동일업종 미국기업보다 5배 이상 평가됐다. 물론 이런 가치평가 방식에 대해 제대로 분석하고 객관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없었으며 이들도 단지 시류에 편승해 터무니없이 높은 목표가격을 제시했다.

 보통 기업가치는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를 합산한 것으로 정의된다. 성장잠재력이 높은 신생기업들이 높은 기업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은 미래에 급성장하는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계속해서 많은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3년 전 적자가 나면서도 높은 기업가치를 부여받은 회사들은 지금쯤 막대한 현금흐름을 일궈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주가는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

 비정상적으로 고평가된 기업가치가 끼치는 또 다른 폐해는 기업들의 무분별한 증자다. 기업주 또는 경영진들은 자신들의 기업이 고평가됐다고 판단하면 주식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적은 지분만 공모해도 큰 자금이 회사에 유입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달된 자금은 자본비용 이상의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에 투자되야만 그 가치가 유지된다.

 이러한 자금이 수익성 없는 사업에 투자되거나 회사내부에 현금으로 쌓여 있다면 이들은 결국 그 기업의 가치를 파괴한다. 문제는 국내 벤처기업들의 자기자본 조달비용이 20∼25%로 추정된다는데 있다. 보유현금이나 투자자산의 수익률과 자본조달 비용의 차이만큼 해당기업 가치는 매일 매일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코스닥에 등록된 상위 40개사의 현금보유액이 1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러한 자금들이 조달비용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사업에 투자되지 않는다면 투자자들에게 되돌아가야 한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이 등록된 기업들의 금고에서 잠들어 있는데 한 기업당 100억원 미만을 조달하는 신규 등록법인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은 논의의 초점을 벗어난다. 오히려 등록 후 증자나 BW, CB의 발행에 의한 자금조달의 타당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지나친 규모의 증자에 대해 감독당국과 기관투자가들이 벌칙을 가해야 한다.

 유휴자금의 반환방법으로는 자사주 취득이나 적대적 M&A의 활성화가 효율적인 방법이다. 80년대 중반에 현금보유가 많은 미국 기업들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적대적 M&A가 도입된 사실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벤처기업의 창업과 성장이 없다면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고 코스닥 시장의 활성화도 기약할 수 없다. 경쟁력이 낮고 사업추진능력도 없이 보유현금에 의존하는 기업을 퇴출시키고 새로운 기술,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하여 사업화하는 벤처기업을 발굴 성장시켜 등록하는 것만이 코스닥 시장을 활성화하는 유일한 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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