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루사’가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후 인간이 자연환경에 너무나 무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TV로 전해지는 태풍의 참상과 이재민들의 애달픈 사연을 듣고 있노라니 안타까움만 저며들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다는 너무도 답답한 심정에 자원봉사를 신청, ‘KT 사랑의 봉사단’ 30여명과 함께 강릉으로 출발했다. 고속도로로 접어들면서 주변의 크고 작은 산사태로 인한 도로 유실 현장을 볼 수 있었다. 강릉에 도착하니 흙먼지와 쓰레기 더미로 변한 아수라장 그대로였다.
수해위문품을 기증하고 봉사활동을 펼칠 박월동으로 떠났다. 그곳에 도착하니 폭이 10여m인 개울은 온통 모래와 뻘로 가득 차 하천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고, 주택의 벽에는 물에 잠겼던 흔적이 역력했다. 한 가옥에 들어서니 창고는 반쯤 무너졌고 안방은 축축한 흙냄새와 가재도구들로 가득했다. 봉사단원들은 8개 조로 나뉘어 복구작업에 들어갔다. 동네 골목길에서 허리춤까지 차는 모래와 뻘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뿌연 먼지를 날리며 재해복구 차량이 수없이 오가며 각종 단체에서 복구 지원차 나온 여러 봉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봉사단원 중에는 오랜 만에 삽을 잡어서인지 동작이 다소 어설퍼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모습을 찾았다. 봉사단원은 자신의 기술업무 분야에 맞춰 침수된 전기시설과 보일러·수도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전선과 스위치·콘센트·모터펌프 등을 교체했고, 자가 수도가 고장으로 물을 사용하지 못하는 집에 모터펌프를 교체해 전기와 수도 사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보일러를 담당한 한 봉사단원이 손에 까만 기름때를 묻혀가며 닦고 조여 보일러가 작동하기 시작하자 주민들은 너무나 고마워했다. 마을 어귀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 중에서 누군가 우리를 찾았다. 어제 우리에게 점심을 준비하겠다는 반가운 전화를 한 ‘강릉YWCA’ 대원들이었다. 마을회관에서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정말 고맙기 그지 없었다. 이것저것 거들다보니 어느새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3일째를 맞았고 나름대로 봉사활동을 펼쳤지만 더 도울 시간이 부족함에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끊임없이 각지에서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의 물결로 인해 언제가는 수해지역이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수해현장에서 모두가 흘린 땀보다 서로가 돕고 살아가는 따뜻한 세상임을 깨닫게 된 것이 더 소중했다.
이연식 서울 관악구 신림8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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