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정부 재산을 무단점유하고 있는 사기꾼 집단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우리는 합법적으로 획득한 이동통신사업권(주파수)을 강제로 빼앗긴 희생자다.”
최근 미국 이통업계가 주파수 경매문제로 떠들썩하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파산한 이동통신회사 넥스트웨이브텔레콤이 보유하고 있는 주파수를 환수해 다른 이통사에 판매하려고 하자 넥스트웨이브가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건이 발전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자본주의의 꽃인 시장의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때 그 피해가 얼마나 크게 나타나는지를 새삼 절감케 해주고 있다.
우선 넥스트웨이브텔레콤이 보유하고 있는 뉴욕과 필라델피아·LA 등 95개 주요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200여개의 주파수대역이 소송에 휘말리면서 귀중한 공공자원이 사장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미국이 지난 90년대 이통사업자를 선정할 때 처음 도입한 주파수 경매제도는 그 후 재정수입을 확대하려는 유럽·아시아로 확산시키는 산파 역할을 해냈지만 정작 미국 본고장에 있는 이통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최악의 주파수 경매’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앨런 살마시 회장이 지난 95년 자본금 4억3700만달러에 설립한 넥스트웨이브텔레콤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이 회사 설립에는 국내에서도 LG정보통신(현재 LG전자)과 포항제철·한국전력 등이 각각 2000만달러씩 투자하는 등 국내 업체의 투자액이 총 1억달러에 달해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앨런 살마시 회장이 회사 설립 이듬해에 FCC가 실시한 주파수 경매에서 중소기업에 배정된 ‘C대역’ 사업권 200여개를 47억달러에 한꺼번에 손에 넣을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 같았다.
미국 정부는 목적대로 재정수입을 두둑히 챙겨서 좋았고, 넥스트웨이브텔레콤에도 투자자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주파수 경매로 톡톡히 재미를 본 FCC가 주파수 경매물량을 계속 내놓으면서 180도 달라졌다는 데 있다. 수요에 비해 주파수 공급이 넘치면서 가격이 폭락한 것이다. 이는 주파수가 가장 중요한 재산이던 넥스트웨이브텔레콤에 큰 타격을 주고 말았다.
넥스트웨이브는 주파수 경매대금 추가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곧 자금난에 빠져 결국 미 법원에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주파수 판매를 통한 세수 확대만을 노린 정부의 안이한 정책이 화를 불러온 것이다. 넥스트웨이브텔레콤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첨단IT 분야에서 정책 당국의 안이한 대응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또 철저한 시장논리가 작용하는 주파수 경매는 도시 지역에는 괜찮지만 소득 수준이 낮은 농어촌 등의 지역민에게는 그 혜택이 돌아가기 어려운 맹점이 있다.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6개 이통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약 1만3000명이 살고 있는 알래스카 중·서부 농촌 지역에서는 아직 이통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현실이 이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주파수 경매제가 아니었다면 알래스카파워앤드텔레폰이 연방 주파수 경매비용(80만달러)조차 건질 수 없다고 판단해 이통사업권을 반납하는 사태가 발생했을까.
<서기선 국제부 차장 kssu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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