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 로랜츠 자일링스 사장
‘팹 없는(fabless) 비즈니스’는 산업화에서 정보화시대로 이동하면서 나타난 ‘굴뚝 없는 공장’ 개념과 비교할 수 있다. 소품종 다량생산에 주력하던 산업화시대에는 굴뚝 공장을 지닌 기업이 제조업을 주도했고 반도체산업 역시 FAB(일관생산라인)의 보유 여부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했다. 하지만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특화된 제품을 제조하는 것이 중요한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뛰어난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팹리스 반도체 기업이 점차 주목 받고 있다.
2001년 반도체 산업이 사상 최악의 불황을 겪으면서 팹을 보유한 기업과 팹리스 기업들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당시 팹을 보유한 많은 기업들은 설비 고정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대규모 해고를 감행할 수 밖에 없었지만, 팹리스 기업들은 비용을 줄임으로써 대량 해고를 피할 수 있었다. 팹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팹 설비 비용 뿐 아니라 반도체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방대한 실리콘 비용과 유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일링스는 팹리스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했다. 84년 설립 당시에는 팹을 보유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FPGA라는 신개념의 로직 칩 제조를 아웃소싱하기로 결정했다. 몇 년 내에 쓸모 없어질 수도 있는 팹에 막대한 자금을 선뜻 투자할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게다가 팹 설비 비용은 점점 상승하고 있다. 싱글 12인치 웨이퍼 팹을 갖추기 위해서는 약 30억 달러의 비용이 소요되는데, 이 팹에 투자할 수 있는 기업은 전세계적으로 인텔, IBM 등 자체 생산시설을 확보하고 있는 10개 미만의 종합반도체회사(IDM)들 뿐이다.
대신 우리는 칩의 설계와 마케팅, 그리고 칩을 프로그래밍하는 소프트웨어와 고객 기술 지원에 주력하면서 ‘팹리스’라는 개념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팹리스 기업들은 높은 현금 유동성과 영업 수입을 바탕으로 25%이상의 자기자본 수익률을 얻을 수 있었다.
버니 본더슈미트 자일링스 공동 설립자는 팹과 팹리스의 갈림길에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요소들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첫째, 팹의 수명이 점차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1980, 90년대에는 CMOS와 같은 새로운 제조 공정이 3,4년 단위로 개발됐지만 오늘날에는 공정 개발 기간이 짧아져 18개월에서 2년 단위로 진행되고 있다. 둘째, 메모리와 같은 범용 제품들은 주로 고비용의 팹 투자를 필요로 하며 셋째, 대량의 반도체 혹은 대량의 컨슈머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게는 팹을 보유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율적이다. 넷째, 규모의 경제는 팹리스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결정 요인이다. 팹리스들이 수탁생산(파운드리)업체와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1000장 이상의 웨이퍼 수요가 있어야 하며 그 이하의 수요는 과도한 웨이퍼 비용을 낳는다.
1994년 ‘팹리스 비즈니스 모델’을 활성화하기 위해 FSA(Fabless Semiconductor Association)가 출범했다. 회원사는 자일링스와 같은 순수한 팹리스 반도체 설계업체에서 TI나 모토로라 같이 팹리스 모델로 전환하고 있는 IDM까지 광범위하다. 향후 5년 내에 수직적으로 통합된 반도체 기업은 12개 미만으로 줄어들지만 독립적인 팹리스 기업은 약 1000여 개사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2010년쯤에는 팹리스 산업이 전세계 반도체 생산의 약 5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산업은 기술력을 갖춘 신흥 기업들의 창의성과 혁신성으로 더욱 발전될 수 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칩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으며 제품 설계와 마케팅에 주력할 수 있다. 팹리스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고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반도체 산업에서는 전통적인 팹 모델보다 더 안정적일 것이다.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제안은 ‘팹리스’로 가라는 것이다. 팹리스는 많은 이점을 줄 수 있다. 그간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한 기업이 몇 가지 측면에서 최고가 되는 것은 가능해도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될 수는 없다. 팹리스 모델은 팹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관리 부담을 줄임으로써 몇가지 핵심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다양한 기업들이 서로 다른 분야에 주력할수록 산업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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