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중장년의 실업문제

◆신종철 송우아이엔티 기술연구소장 sis@songwoo.co.kr

 

 “어제 만난 그분도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출발하여 프로젝트 관리자까지. 하지만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너무(?) 오래 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제는 자신이 아무 쓸모없게 되었다는 절망감에 싸인 그에게 남들도 같은 처지라는 위로 아닌 위로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 장면은 소설이나 인생상담소에서 흘러나온 얘기가 아니라 필자가 한두 달에 한번씩은 겪는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40대의 기술인력,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불황이나 구조조정의 여파로 직장을 그만두면서 장래를 설계하거나 새로운 진로를 찾지 못하여 절망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화하여 요즈음 각광받는 새로운 분야는 엄두도 나지 않고 그렇다고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곳은 찾을 수가 없고….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금 현직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30대 후반이면 벌써 이와 같은 고민과 걱정을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전문가와 기술자가 대우받고 존경받는 풍토와는 거리가 멀다. 오죽하면 최근 있었던 화려한 고궁과 웅장한 월드컵 경기장 준공식장에서 “작가는 간 곳 없고 출판사 사장이 주인공 노릇을 다 해먹는 출판기념회장 같다”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왔을까. 이런 사회적 풍토는 기술자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로 계속 성장하기보다는 특징 없는 관리자로 변신하게 하여 결국은 스스로의 사회적 효용가치를 떨어뜨리고 활동 영역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언젠가 존경하는 후배 한 분이 방송 인터뷰에서 1년이면 정보기술의 절반 정도가 바뀐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과장된 측면도 없지는 않겠지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술 변화의 속도를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20년 경력의 기술자가 2년 경력의 초보자에게 자신있게 큰소리 칠 수 없는 것이 우리 정보산업계의 현실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화할수록 여러 가지 기술과 전문지식이 필요하게 되는데도 조금 유행이 지난 기술을 가진 사람은 지레 겁을 먹고 스스로 도태해 버림으로써 소중한 경험과 기술이 사장되고 마는 것이다.

 의학의 발전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 기여했지만 기술의 발전은 반대로 우리의 사회적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제 40대 중반이면 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의 전문 분야라 자부하며 일해 왔던 지난 20여년에 비해 남은 세월이 더 많은데,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다 버리고 현장을 떠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재활용하고 청년 실업만큼이나 심각해지고 있는 중장년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선 풍부한 경험과 기술을 가진 이들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활동영역을 확대하는 방안부터 한번 생각해 보자. 토목이나 건축 등 다른 기술 분야에 비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는 감리시장을 활성화하면 고급 인력의 재활용뿐만 아니라 정보시스템의 품질향상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술자의 경력에 따라 삼각형 구조로 이뤄진 인건비 기준을 마름모 구조로 변경하여 나이가 들어 다소 생산성이 떨어지더라도 현장에서 떳떳하게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아닐까.

 어차피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기는 하지만 변화를 화가 아닌 복으로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새로운 기술도 지금까지 가꿔진 토대 위에서만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그냥 내버려지고 있는 이들의 소중한 경험과 지식을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관심과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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