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정음과 정보기술

 ◆진용옥 경희대 정보통신 대학원장 chin3p@chollian.net

 

통일이후의 목표는 분명히 민족의 자존과 생존이다. 이를 위한 진출(進出)과 후출(后出) 방향을 분명히 해두고 서로의 역할분담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진출이란 민족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후출은 뒤로 빠지는 출구를 말한다. 그렇다면 진출은 어느 쪽이고 후출은 어느 쪽인가. 반도의 북으로는 광활한 대륙이 있고 남으로는 무한한 해양이 펼쳐져 있다. 이 사이에 낀 반도는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기 쉽지만 양수 겹장식으로 두쪽을 칠 수도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런데도 지난 역사를 반추해 보면 우리들은 협공만 당했지 양수겹장은 없었다. 그 주요한 이유는 내부 갈등이었다.

고구려 멸망이 그렇고 조선시대 양대 국난에서도 명백히 보아온 바가 그렇다. 가까이는 지난 한세기 동안 굴종과 단절(분단이 아닌)이 진행되는 동안 민족 내부간 사생결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두 검객만이 민족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둘이서 노림수만을 찾는 동안 그들과 우리들 뒤로는 곰과 용이 노려보고 있으며 독수리와 박쥐가 하늘을 맴돌면서 기다리고 있다. 칼을 내릴 때 얼른 해치우기 위하여.

 두 검객은 민족의 장래는 접어두고라도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상대를 겨누고 있는 한 뒤쪽은 방어할 수 없다. 겨누던 칼을 반대로 돌려야 한다. 하나는 한쪽은 대륙 쪽으로 다른 쪽은 바다 쪽으로. 대륙은 과거 우리가 진출해야 할 길이었지만 이제는 뒤로 빠지는 후출구가 되어야 하고 바다를 넘어 일본과 북, 남미, 호주와 동남아로 가야 한다. 그러나 대륙이라는 도움닫기가 없는 한 독자적 바다 진출은 무리다.

 물론 방향을 정했다고 일이 다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철기시대의 낡은 무기로는 정보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 후출이든 진출이든 정보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무기를 들어야 한다. 지난 7년간 필자는 남북간의 새로운 역할과 통일 이후의 목표를 모색하고 그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북한학자들과 다섯번을 만났다. 그 결과 정음(한글)의 엔트로피(평균정보량)에서 남북의 이질적 어문 규정(두음법칙의 유무 등)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남북이 동일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것은 컴퓨터 용어사전을 공동으로 편찬하면서 현실로 나타났다. 이질적 요소는 거의 5% 미만이었다. 이는 오차범위보다 훨씬 적은 수치다. 그 동안의 우려와는 달리 언어와 첨단기술에서의 동질성은 결코 훼손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단된 것이 아니라 잠시 단절되어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순간이었다. 이후부터 필자는 분단이란 용어를 쓰지 않고 단절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지난 2월 옌볜에서 열렸던 코리아컴퓨터국제학술대회에서 남한과 북한 그리고 중국 학자들이 우리말을 지칭하는 단어를 정음이라 호칭하기로 결의하였으며 4월 ISO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는 공식문서상의 표기(hanguljamo) 변경에는 난점이 있지만 번역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의가 있었다. 8월에는 남북중 3국 합작으로 중국 옌볜대학에 정음 정보기술연구소를 세우고 상호 필요한 정보와 인적 교류를 진행키로 하였다. 정음은 통일이후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정보시대의 새로운 무기로 발전시켜야 할 소중한 민족의 유산이면서 세계의 문화 유산이다. 정음기반의 정보 시스템을 만든다면 경제성 있는 세계적인 시스템을 창안해 낼 수가 있다. 그러므로 검객들은 칼을 버리고 정음과 정보기술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들어야 한다. 대륙으로 후출하고 바다로 진출하는 역할 분담이 이뤄진다면 민족도 살고 검객도 살아남는 상생의 묘수가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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