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극일을 위한 제언

◆모인 문화산업부장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가 한일간의 외교분쟁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최상룡 주일대사를 초치한 데 이어 최근 외무부 장관 명의의 유감 친서를 전달했다. 정부는 이를 계기로 다각적인 대책을 수립, 우리의 재수정 요구 방침을 관철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하고 차갑기만 하다. 고노 요헤이 일본외상의 떨떠름한 태도를 보면 더욱 그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일본의 한 도지사는 한술 더 떠 역사교과서 채택문제를 일선교사들의 결정에 맡길 수 없다며 일본 우익들의 손을 한껏 들어주었다고 한다.

 정부는 그러나 계속 강공의 목소리만 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따라 한일 양국 당국자들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매듭지으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테면 재수정은 하지 않는 대신 교육현장에서 역사교과서로 채택되지 않도록 일본정부가 일정 역할을 맡는 데 양국이 합의할 것이라는 것이다.

 한일 양국은 3년 전 과거직시와 통절한 반성 및 사죄 등을 전제로 우의를 다짐해 왔다. 그 일환으로 꽁꽁 묶였던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개방도 단행됐다.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모은 이와이 슌지의 영화 ‘러브레터’와 ‘우나기’ ‘하나비’ 등이 국내에서 선을 보이고 ‘차게 앤 아스카’ ‘페니실린’ 등 일본 유명가수들이 대거 내한, 공연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그같은 양국의 합의정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되돌아봐야 할 것은 그들의 역사왜곡에 대한 파렴치한 태도도 그것이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허점을 드러내 보여왔는지를 반성해 봤으면 한다.

 대중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이미 그들 우산속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정도다.

 한 일본 대중평론가는 지상파방송 프로그램 대부분이 일본의 것을 그대로 베껴 옮겨놓은 것이며 한두명이 아닌 대여섯명이 무리를 지어 노래하는 것도 실은 일본 음반계를 모방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더 나아가 최근 앞다퉈 편성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의 시대극 편성도 시청률을 의식한 나머지 일본의 그것을 그대로 흉내낸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의 이같은 말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우리 대중문화에 뿌려진 일본 대중문화의 잔재는 끝이 없다.

 문제는 그들의 문화를 제대로 소화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 있다. 일본 대중음악이 뛰어난 것은 음악 자체보다는 수많은 장르가 공존하기 때문이며 저급한 TV방송사 뒤엔 NHK라는 공영방송이 떠받치고 있어 그들이 생존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문화 저편엔 튼실한 사회안전망이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특정 장르보다는 자양분이 넉넉한 산업, 즉 토양의 우수성에서 일본 대중문화의 뿌리를 찾아야 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토양과 인프라보다는 저급한 특정장르 및 콘셉트 베끼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일본 대중문화의 추가 개방시기를 무기한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초강경론자들은 일본 정부가 우리의 역사교과서 재수정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주일공관의 폐쇄 등도 검토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일면 일리 있는 말들이다. 그러나 그같은 조치가 극일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일본을 극복하고 이기는 길은 그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상호 교류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좋은 것은 취하되 나쁜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지혜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표피적이고 충동적인 쓰레기 문화만을 베끼거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좋은 일은 서두를수록 좋다는 일본 속담이 있다. 그들에게 책잡힐 일이 있거든 오늘 당장이라도 서둘러 그만두자. 그래야만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홀대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그들의 저급한 쓰레기 문화 베끼기를 멈추는 일도 극일의 한 방법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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