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기는 벌었는데 얼마나 쓸까.”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IT업체들의 경상이익이 예상보다 높다는 것이 알려짐에 따라 이들 기업이 국내에서 얼마나 건설적인 부문에 투자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IBM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1273억원의 흑자를 올렸으며 마이크로소프트도 2000 회계연도 기준으로 596억원, 한국후지쯔 203억원, 한국오라클 138억원, 한국썬 85억원 등의 경상이익을 기록했다. 한국시장이 이들 다국적 기업에는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자금투자를 포함한 벤처지원 프로그램을 잇달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집행은 지지부진, 형식적인 ‘흉내내기’ 수준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어떤 프로그램들이 있나=직접투자 프로그램과 간접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이들 업체는 지난해 이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앞다퉈 쏟아냈다. 직접투자 프로그램으로는 컴팩코리아가 ‘e코리아’ 프로그램을 발표한 것을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의 ‘KIVI’ 프로그램이 있으며 한국썬(300억원)과 한국유니시스(200억원) 등도 직접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간접지원 프로그램의 경우는 지난해 사상 최고의 흑자를 기록한 한국IBM이 ‘IBM글로벌 파이낸싱’ ‘인큐베이터 파트너링 프로그램’ ‘ASP 프라임 프로그램’ 등을 내놓은 바 있으며 컴팩코리아도 장비대여 프로그램인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한국썬 역시 ‘선 스타트업 이센셜 프로그램(신생벤처)’ ‘선 디벨로퍼 이센셜 프로그램(제품개발 단계)’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제품출시 단계)’ 등의 지원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이외에도 한국HP가 장비대여 프로그램인 ‘거라지 프로그램’을 선보인 바 있다.
◇현재 진척 상황은=컴팩코리아가 아파워게이트 등 3개 협력사를 투자대상 기업으로 선정해 놓은 정도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아직까지 대상 업체를 선정하는 단계라고 밝히고는 있으나 공식 발표는 미루고 있다. 한국썬의 경우는 3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할 업체를 지난달까지 선발한다는 목표였으나 대상업체 선정작업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간접지원 프로그램은 활발히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벤처지원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파트너 프로그램이나 영업지원 프로그램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무상장비 프로그램의 경우도 3∼6개월 등 일정기간 한해 지원하는 등 세일즈 프로그램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일부 파이낸싱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왜 늦어지나=가장 큰 이유로 투자하려는 기업에 대한 잣대가 너무 엄격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투자 유치를 희망하는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창업 초기여서 외국계 기업이 원하는 수익모델이 빈곤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국유니시스의 경우는 투자대상 업체를 선정해 놓고도 수익모델에 대한 기준과 회계기준의 차이를 들어 중단한 바 있다.
자금을 지원받으려는 업체가 많은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경기후퇴로 자금난에 처한 업체가 많다보니 자연히 다국적 기업의 프로그램에 목을 매겠다는 업체가 폭증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당초 200여개사가 신청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560개사가 신청을 하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영업 프로그램과 연계를 시키다보니 사실상 선정할 업체가 마땅치 않다는 점도 투자를 망설이게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초 벤처투자 붐에 힘입어 윈윈 성격의 한국기업에 대한 투자계획을 마련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이란 영리취득이 제1의 목적인 만큼 정상적인 비즈니스를 통해 흑자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그러나 선진기업들이 본국에선 영리활동을 통해 얻은 재원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제3국에서 벌어들인 돈의 재분배에는 인색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승정기자 sj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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