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의원의 유럽 IT강국 방문기>(2)핀란드

역전의 드라마를 보는 것은 즐겁다. 프로야구나 축구경기 관람뿐만이 아니라 국가간의 경쟁이나 역사발전 과정에서도 역전의 장면을 보는 것은 스릴과 기쁨을 준다.

지난 2월 18일부터 20일까지 짧은 일정이긴 했지만, 1980년대 말 우리와 비슷한 금융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정보화전략」의 성공적인 수행을 통해 북유럽의 신흥 선진국으로 부상한 핀란드의 IT산업 현장을 돌아보고 느낀 감회는 바로 역사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전의 드라마였다. 핀란드와 이웃국가 스웨덴간의 관계는 마치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보는 것과 같다. 피압박 민족과 지배국가, 후발 산업국가와 선진 경제국가간의 관계가 모두 한일간의 관계와 같고 핀란드가 스웨덴에 대해 갖고 있는 콤플렉스와 치열한 경쟁심리까지도 닮은 꼴이다.

핀란드의 성공은 노키아의 성공으로 대표된다. 세계 휴대전화기 시장의 35%를 점령한 노키아는 회사 이름 때문에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본 기업인줄 알았다. 노키아는 핀란드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 이름이다. 원래 목재소에서 시작해 제지 재벌로 일어섰고 타이어, 화학, 케이블, 가전제품 등 문어발식 확장을 계속하다가 80년대말 거품 경제의 퇴조와 함께 서리를 맞았다.

이때 노키아를 구출한 것이 북유럽의 잭 웰치라고 불리는 요르마 올릴라 회장이었다. 그는 파격적인 경영방식인 「선택과 집중의 원리」를 노키아에 적용한다. 고무, 제지, 펄프, 가전, 타이어, 컴퓨터 등 120년 동안 노키아를 이끌어 온 전통산업을 모두 포기했다. 그리고 이동전화 단말기와 정보통신 인프라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가혹한 구조조정이었지만 그것이 노키아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선단

식 경영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나라 기업인들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노키아 직원 6만명 가운데 3분의 1은 연구개발(R&D)에 종사한다. 노키아의 두뇌를 제공하는 원천은 헬싱키대학이다. 한국에 한대밖에 없는 연구용 슈퍼컴퓨터가 헬싱키 공대에만 6대가 있으며, 대학 졸업생의 70%가 이공계 출신이다.

노키아의 벨리 준트백(Veli Sundback) 수석부사장은 핀란드의 핵심적인 성공요인으로 수준 높은 교육과 영어 그리고 앞을 내다보는 비전(vision)을 들고 있다. 가진 것이 없었기에 오히려 변신에 쉬웠는지도 모른다. 핀란드는 「정보화 자문위원회」(Information Advisory Board)라는 기구를 중심으로 정보화 국가 만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10년 전 어느 나라도 아직 주목하고 있지 않을 때 세계에서 일등가는 IT 국가를 만들겠다는 국가목표를 제시하고 경영전략을 수행해왔다. 그리고 핀란드 정부는 「정보공개법」(Act on the Openness of Government Activities)을 만들어 정부의 정보에 국민이 접근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보장하고 있다.

아일랜드와 마찬가지로 핀란드의 경우에도 「능숙한 영어」는 국가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핀란드는 한국과 같이 우랄알타이어 계통의 핀어를 쓰지만 성공적인 영어교육으로 국민의 8할이 영어에 능숙하다.

핀란드의 강점은 교육에 있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핀란드의 헬싱키 공대는 미국의 MIT나 스탠퍼드대학에 비견될 정도다. 헬싱키 공대에서 포스닥(Post-doc)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 과기대 출신의 이영규 박사는 한국의 공대 수준이 헬싱키 공대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2000년 4월에 발표된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 기준 국가경쟁력 순위 3위에 오른 핀란드는 이미 과거의 핀란드가 아니다. 1994년도 IMD 순위로 핀란드가 20위일 때 한국은 24위를 기록했다. 큰 차이가 없는 중위권 국가였다. 그러나 90년대를 통과한 뒤 핀란드는 경쟁력 세계 3위에, 1인당 GNP 2만5000달러, 국가정보화 순위 1위의 선진국으로 급부상했다.

이제 핀란드의 1인당 GNP는 스웨덴을 추월한다. 과거 오랫동안 이웃 강국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던 핀란드, 항상 스웨덴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려 왔던 핀란드가 1990년대 노키아를 필두로 한 정보통신 산업의 부흥과 국가정보화 전략의 성공적인 수행을 통해 전통적인 선진국 스웨덴을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