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스톰 손정숙 사장 asksohn@designstrom.com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상상해 보자. 깔끔하게 차려 입은 웨이터가 메뉴판을 들고 나온다. 잠시 고민 후 스페셜 디너 코스를 주문한다. 곁들여 와인도 한 잔. 잠시 후 아주 향긋한 냄새의 수프가 내 앞에 놓인다. 우아하게 후추병을 잡는다. 가끔 수프에 후추 대신 소금을 넣은 적은 없는가. 아니면 중국요리집에서 간장 대신 식초를 잘못 쏟은 적은 없는가. 그것을 단지 자신의 실수로 생각하고 넘어가지는 않았는가.
현재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TV나 비디오의 리모컨, 세탁기의 수많은 버튼과 기능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그것들의 기능을 제대로 파악하고 사용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매뉴얼을 통해 반복과 학습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비단 일상생활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을 사용할 때는 훨씬 더 복잡하고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고들 한다. 우리는 단 몇 번의 클릭으로 길을 잃어버린다. 심지어는 내가 무엇을 하기 위해 인터넷을 쓰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곤 한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아이콘, 익숙하지 않은 메뉴명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들, 현란한 이미지들, 판독하기 힘든 본문들…. 현재의 위치 파악이 안되거나 때론 이전 화면이나 홈페이지로의 이동조차 불가능하게 돼 있다. 결국 우리는 지루함·불쾌감·좌절감을 안고 자리를 뜨게 된다.
상황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개인정보 유출의 두려움을 안고, 단지 편리하다는 이유로 인터넷 구매를 작정했는데 복잡한 구매 및 결제 방식의 번거로움에 난감해 하거나 구매 확인을 할 수 없어 답답해 한 적은 없는가. 인터넷 상거래는 오프라인과는 다른 구매 방식으로 인해 구매자가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고 동시에 개인정보 유출문제로 불안해 해야 한다.
사이트 운영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인터넷 쇼핑몰 사용자의 경우 동일 사이트에서 반복 구매하는 경우가 흔하다. 복잡한 시스템으로 인해 일단 떠난 고객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경우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는 웹사이트 구축이 기업의 이윤 획득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주게 됨을 확연히 볼 수 있다.
이런 인터넷상에서의 문제는 사이트를 개발할 때 사용자의 입장이나 사용성을 고려해 치밀하게 설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웹사이트 개발을 위해서는 「인터넷을 통한 사용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디자인」해야 한다. 시각적인 면만을 강조하거나 또는 기능적인 면만을 강조해서는 완전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아름답지만 일상생활에서 입을 수 없는 옷들이 옷의 본래 기능을 상실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 각 업계에서는 상품의 기본 기능에 충실하고 사용자에게 편리성을 제공하는 상품을 개발하자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인터넷이란 공간에 관한 설계도 같은 맥락에서 전개돼야 한다. 웹사이트가 인터넷이란 컴퓨터망을 통해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공간적 상품이라고 볼 때 웹사이트를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HCI(Human-Computer Interaction)라는 개념이 대두된 것도 그것을 총체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HCI는 인간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컴퓨터 내의 각종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완성하는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즉 컴퓨터 사용자를 고려한 상품 개발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HCI가 웹에이전시의 차별화와 컨설팅 능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유행처럼 언급되고 있다. 이런 개념은 웹 구축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확장돼야 할 것이다. 사용자 중심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요구사항과 가치기준을 파악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현재도 유용한 정보를 찾아 웹사이트를 항해하고 있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사용자들이 지금 찾아와서 잠깐 머무르고, 다시 또 찾아올 수 있는 멋진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활용성을 고려해 웹사이트를 기획하고 제작해야 한다.
HCI는 이런 사용성과 활용성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 개념이고 우리는 이를 통해 조금씩 인터넷 정보제국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만이 충성도 있는 고객들을 확보해가고 또한 기업의 이윤창출과도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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