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經癒着<18>
『집행할 때는 사장님의 결재를 맡았습니다. 기억나지 않습니까?』
부사장은 나를 쳐다보며 반문했다. 나는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것을 막기 위해 선물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한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간부들이 선물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비자금 결재를 요청했을 때 그것을 승낙한 기억도 떠올랐다. 돌이켜 생각하니 주관이 없는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부하 임원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모든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군. 그러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권영호를 고발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일이 묻히겠소? 그가 다른 마음을 먹고 폭로하거나 딴 짓을 하면 일이 번지지 않겠소? 그 자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금감원에 투서를 낸 것 같은데, 투서는 그곳에만 내지 않았을 것이오.』
『우리가 로비를 한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대가성이 없이 그냥 선물을 한 것밖에 없습니다.』
『대가가 없다고 하는 것은 당신 생각이고. 당국이나 사회에서도 그렇게 보겠소?』
『어쨌든 법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도덕적인 신뢰감이 문제지요. 더구나 창투사에서 자금투자 대상 기업 사장의 뒷조사는 그들에게 적잖은 반발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먼저 이 사실을 알려주고 사과하는 것이 어떻소? 그들에게 모두 공문을 보내서 사실을 알리고 사과하시오. 그리고 만약에 권영호가 그들에게 협박을 할지 모르니 그것에도 대비를 하라고 일러주는 것이 좋지 않겠소?』
나의 말에 간부들은 기겁을 하면서 반대했다.
『그것은 안됩니다. 사생활을 가지고 권영호가 협박을 하면서 돈을 뜯어내는 바보는 아닐 것입니다. 투자를 하려고 사업 파트너를 알기 위해 뒷조사하는 것은 그들도 이해할 것입니다. 그들이라고 해도 그런 일을 했을 것입니다. 일부에 알려진다고 해도 그냥 넘어갈 것입니다. 그들에게 공문을 보내 사과까지 하면 앞 뒤 말이 맞지 않습니다. 그것을 집행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딴 소리를 하는 것이 말입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일보다 그냥 지나가는 게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권영호 문제는 제가 따로 만나 담판을 해보지요. 그를 고발하지 않는 선에서 넘어가는 것으로 하고, 그도 딴 수작 못하게 조치하겠습니다.』
『그는 증권 조작과 횡령범이오. 그를 놔두는 것도 방임에 해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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