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국 벤처기업의 고질병

『100만달러 매출목표에 80만달러를 달성한 업체보다는 50만달러 매출목표에 80만달러를 달성한 업체가 높게 평가받습니다.』 최근 금의환향한 미국의 한국계 벤처스타 마이클 양이 남긴 조언이다. 한국 벤처기업들이 미국에 진출해서 가장 쉽게 저지르는 실수가 자신의 가치에 대한 부풀리기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미국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외형만 화려한 사업계획서보다는 보수적인 입장에서 자사를 평가한 계획서를 더 높게 평가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 국내 벤처기업들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가 과대 포장된, 내용없는 사업계획서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사실 국내 벤처기업들의 사업계획서를 보면 황당한 경우가 많다. 30∼40쪽에 달하는 사업계획서를 다 읽고 난 다음에도 이 회사가 어떤 사업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신들의 사업 아이템과 전략에 대한 정리도 제대로 못하는 회사가 어떻게 투자유치를 하고 비즈니스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인지 의아한 경우가 많다.

최근 막을 내린 「한민족 벤처네트워크(INKE2000)」 행사에서도 국내 벤처기업인들의 고질병이 재연됐다. 국내 벤처인들은 언론이나 귀동냥을 통해 알고 있는 해외 벤처스타들을 찾아 이리저리 몰려 다녔다. 이들이 얼굴도장이라도 찍기 위해 열심히 쫓아다닌 이유는 어떡하든 자본유치나 비즈니스협력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국내 벤처기업인들은 자신들도 사업가라는 점을 간과한 것 같다. 결코 이익이 기대되지 않는 곳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지는 않는 냉혹한 비즈니스의 현실을 망각한 듯 했다. 단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해외 스타 벤처기업의 문턱이 낮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 뿐만 아니라 다분히 한국기업의 고질적인 사고로 비춰졌다.

벤처경영은 정치가 아니다. 이리저리 권력을 찾아 옮겨다니는 철새 정치인들의 모습을 판박이하고 있는 우리 기업인들의 고질병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자리였다. 자신의 비즈니스모델에 확실한 자신감이 없다면 미국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물론 같은 민족에게도 역시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국내 벤처기업인들이 되새겨야 할 것이다.

<디지털경제부·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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