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묵 인터넷부장 kmkim@etnews.co.kr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하다. 어떻게 한 나라의 경제가 채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많은 이들이 현 상황을 제2의 IMF로 내몰리는 형국으로 진단한다. 수익모델 부재로 야기된 닷컴기업의 위기가 벤처기업 위기로 비화되더니 대기업들의 구조조정과 맞물려 급하강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벌써부터 돈가뭄과 실업대란의 징조가 여러곳에서 보인다. 온탕과 냉탕을 넘나드는 시기가 불과 1년이 안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한 나라의 경제라고 하기엔 창피할 정도다.
현 위기상황은 분명 대기업과 금융권을 비롯한 우리경제 주체세력의 구조조정 실패에 기인한다. 그런데 불똥은 엉뚱하게 튀는 것 같다. 요즘 사회적 분위기나 언론의 방향은 닷컴벤처 희생양 만들기 일색이다. IMF를 졸업시킨 일등공신으로 꼽혔던 닷컴벤처 신화가 또 다른 경제파국의 주범으로 낙인찍혀가는 과정은 마치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정확하게 6개월 만의 극적인 반전이다. 영화가 아니면 보기 힘든 코미디같은 장면도 한둘이 아니다. 20∼30대 나이의 시가총액 수조원을 가진 닷컴 신데렐라의 출현에서 청와대 청소원을 「동아줄」로 모신 벤처사기꾼까지.
요즘 같아선 닷컴벤처가 성공의 보증수표로 통했던 시기가 언제 였던가 싶다. 운영자금 몇천만원을 못구해 발을 동동 구르는 CEO를 보면 그 넘쳐났던 펀딩자금은 어디로 숨었는지도 궁금하다. 이 모든 게 닷컴이 온 국민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시기와 너무 가까워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다. 경제사이클이 손바닥 뒤집기(여반장)도 아닌데 말이다.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믿고 싶다.
이 영화속엔 주연만큼이나 많은 조연들도 출연했다. 대기업과 언론 그리고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이들이 한몫을 위해 뛰었다. 당시 주연인 벤처기업가나 자본조달시장 관계자들보다 훨씬 열심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닷컴벤처에 돌을 던지고 있다는 것 뿐이다. 영화니깐 가능할 것이다.
잠시 냉정하게 1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가서 주연을 꿈꿨던 조연들의 행동을 들여다 보자. 대기업들의 호들갑부터 보자. 마치 뒤지면 큰 일이나 날듯이 사내 아이디어 공모후 분사를 하는 등 닷컴벤처 만들기에 허둥지둥한 것이 그들의 초기모습이었다. 또 그것도 안되면 돈을 주고 닷컴벤처를 인수해 닷컴비즈니스시장 과열에 큰 몫을 담당했다. 닷컴열기가 수그러진 이제와서 그러면 그렇지 식의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돌던지기에 앞장서는 것은 정말 마땅치 않아 보인다.
언론은 언론대로 차별화에 함몰돼 무작정 「닷컴벤처 스타키우기」로 지면 경쟁을 벌였다. 시가총액이 신데렐라의 기준이 되고 옥석의 구분없는 비즈니스 모델이나 자질이 모자란 CEO 인터뷰를 일삼아 우리나라를 「기반없는」 벤처천국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랬던 언론이 이젠 무조건 옥도 석으로 몰아가는 우를 또 다시 범하고 있다.
코스닥에 목을 맸던 일반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더 나아가 프리코스닥까지 돈을 싸들고 내돈 좀 받아달라고 애원했던 그들이다. 또 주가가 떨어지면 CEO들에게 항의전화를 해 경영활동을 크게 방해했던 그들이다. 자기 책임하에 행한 투자가 손실을 봤다고 닷컴벤처들에 일제히 돌을 던진다면 그들의 손은 정말 부끄러운 손이다.
거론 대상 가운데 정책당국이 빠져 있다. 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정책당국은 이번 영화의 감독역할이었다. 진정 우리나라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벤처왕국을 꿈꿨든 소문처럼 정치자금 모으기의 수단이든 간에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연출자다. 설사 주연과 조연의 연기가 미숙했다 해도 감독의 책임이 면피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선진국들이 4∼5년에 걸쳐 행하는 성장과 하강의 비즈니스 진화단계를 불과 1년 사이에 압축해 경험하고 있다. 어차피 치러야 할 것들을 고도로 응축해 경험하는 셈이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정말 값진 것이다. 코스닥에서 벤처열기 냉각으로 날아간 돈만도 무려 30조원에 이른다. 비싼 대가를 치른 교훈이다.
미국 포천지는 지난 10월말 특집 「닷컴기업 몰락의 교훈」을 통해 「닷컴시대는 끝나고 인터넷시대가 개막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휴식기를 지나 본격적인 성장기에 진정한 강자가 도래할 것으로 예측했다. 우리가 직면한 난국은 어찌보면 구조조정을 비롯한 IMF의 교훈을 소홀히 한 결과다. 또 다시 닷컴몰락의 교훈을 소홀히 할 경우 이제 막이 오른 인터넷시대의 국제사회에서 우리 자리는 없을 것이다. 여전히 옥과 석을 가리지도 못한 채 극단으로 치닫는 「냄비성」 묻지마 행태만이 재연될 것이다.
이제 모든 사안을 극으로 몰아가는 구태는 버려야 한다. 이것이 1년 사이에 비싸게 주고 얻은 교훈이다.
따지고 보면 고통스런 압축 진화단계로 경쟁국보다 4년을 번 셈이다. 극단적인 호들갑은 전혀 도움이 안된다. 지금부터라도 실을 득으로 만드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그것은 영화의 해피엔딩을 바라는 한 조연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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