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원 LG전자 사장
우리나라 통신산업의 역사는 외국 선진업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일궈낸 결실은 실로 눈부시다고 할 수 있다. 세계 200여개국의 국가 중 자체기술로 교환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10여개국에 불과하다. 100년 이상의 통신산업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유럽 등과 비교해 볼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세계 최초로 CDMA 이동통신기술을 상용화한 데 이어, 동기 및 비동기식 IMT2000 기술개발에 있어서도 세계적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등 통신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입지가 과거와는 많이 달라져 가고 있다. 에릭슨·루슨트 등 세계적인 통신업체들이 잇따라 우리나라 업체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는 것은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단기간에 이뤄진 이런 발전은 100년 이상의 기술과 마케팅 노하우를 갖고 있는 선진업체들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몇몇 선진 통신업체들이 세계 통신시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쌓아온 기술력과 영업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현재 국내에는 이동통신서비스 가입자가 2700만명에 이르고 있고 무선가입자망(WLL), 초고속인터넷 등 첨단 통신서비스도 이뤄지고 있다. 국내 통신시장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통신사업자든 장비제조업체든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업자나 제조업체 모두 이 점에 공감하고 있지만 사실 말처럼 세계시장 진출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막강한 자본과 브랜드·기술력 등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한 공룡 같은 유수의 업체들이 버티고 있는 세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최근 베트남에 국내 이동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과 통신장비업체인 LG전자가 공동으로 진출해 장비 수출은 물론 서비스까지 제공하게 된 사례가 있었다. 이동통신은 기간산업이기 때문에 해외에서 이동전화서비스를 직접 실시하기 어려운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일부 지분 참여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동통신산업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한 서비스업체는 서비스업체대로 장비업체는 장비업체대로 각각 해외시장 진출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서비스업체와 장비업체가 함께 해외시장에 진출할 경우 서비스업체는 해외현지 환경에 맞는 네트워크 구축과 서비스 운영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다. 때문에 다양한 통신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생기고 어떤 환경에서도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장비업체의 경우는 좋은 제품을 제 값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고 현지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을 높임으로써 브랜드에 대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번 베트남 이동통신사업 진출이 서비스업체와 장비업체가 손잡고 직접 자본출자를 통해 현지 통신사업에 참여해서 통신서비스와 장비수출을 동시에 이뤄낸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베트남 사례에서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시장성」이라는 측면이다. 베트남은 통신인프라가 취약하고 시장의 잠재적 성장성이 큰 지역이라는 점에서 미래시장으로서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중국·인도·남미 등의 지역에 세계 유수의 통신업체들이 몰려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세계는 통신업체들의 전쟁터다. 거대한 기업들이 M&A를 통해 몸집을 키우는 한편 경쟁관계의 업체들도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경쟁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우리 업체들도 홀로서기보다는 서비스사업자와 장비업체간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공동으로 세계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해당 기업은 물론 국익차원에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위해 좀더 현지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기술경쟁력 확보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도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이러한 업체간의 협력 분위기를 북돋우는 한편 측면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은 결코 옛말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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