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449) 벤처기업

해외 진출<39>

아내와 신경전을 벌이고 공항으로 떠났다. 비행기 안에서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윤 실장은 내 표정을 살피면서 우울한 나의 기분을 아버지의 죽음 때문으로 아는 눈치였다.

오후 2시 경에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했다. 연락을 받은 러시아 정부 관리가 공항에 나와 있었다. 한 명은 젊은 여자였고 다른 한명은 삼십대 중반의 남자였다. 여자는 털외투에 하얀 털모자를 쓰고 있는 백러시아 사람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고 인형처럼 예뻤는데 나는 문뜩 십여 년 전에 알게 되었던 백러시아 여자 나타샤가 떠올랐다. 그녀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 결혼한 주부일 것이다. 두 사람은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서 한국에서 온 최영준이냐고 물었다. 매우 유창하게 하는 영어였다. 영국식 발음을 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영국 유학물을 마신 사람들로 보였다. 그들은 라스토푸친이 보낸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윤 실장과 나를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곳에 벤츠가 있었는데 젊은 여자가 운전대에 앉았다. 나는 그 여자를 라스토푸친의 비서로 알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운전기사였다. 공항에서 출발한 승용차는 빠르게 달려 모스크바로 진입했다. 나는 15년 전에 주 소련 미국대사관에 기술 용역요원으로 근무한 일이 있었고 중간에 모스크바를 두 차례 다녀간 일은 있었지만 지금 보이는 거리는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눈이 꽁꽁 얼어붙어 을씨년스러웠지만 중심가로 접어들면서 보이는 유럽풍의 중세기 건물은 그대로였고 더러 눈에 띄는 시멘트 건축물도 십여 년 전에 보았던 그대로였다. 그러나 전보다 훨씬 차량이 많아졌고 실업자 수가 늘어나서인지 거리의 인파도 많았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걸인들이 눈에 띄었고, 다른 한편 화사한 간판과 호화로운 장식도 새로 나타난 풍광이었다. 사람들은 외투로 목을 감싸고 입김을 하얗게 내면서 걸어갔다.

승용차는 크레물린 궁을 가로질러 가다가 외무성 앞을 지나서 칼리닌 가를 돌아 고리키 박물관 앞을 지나갔다. 붉은 벽돌로 새로 지은 고리키 호텔로 들어갔다.

『우리가 숙소를 마련해 두었습니다. 일단 여장을 풀고 나서 크레물린 궁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내가 말하고, 재빨리 내리더니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사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 안은 유럽풍의 장식들로 가득차 있었고, 온방장치 때문인지 더울 지경이었으며 그래서인지 여자들이 끝이 짧은 스커트 차림으로 허벅다리를 드러내고 왔다갔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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