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디지털 혁명을 이끌어온 분야가 컴퓨터와 정보통신이었다면 앞으로 디지털 혁명을 이끌어갈 분야는 정보가전이라는게 산업 전문가들은 공통된 전망이다.
이는 최근 개최된 세계적인 가전 전시회의 내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세계 가전제품 전시회에 출품된 제품들은 대부분 가전과 컴퓨터 그리고 통신이 하나로 융합된 정보가전 제품들이다. 그만큼 이들 세 분야의 경계가 점차 무너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가전제품 전시회에 참가한 국내 업체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가전 제품들을 다수 출품해 가전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 업체들로부터도 찬사를 받는 등 앞선 기술력을 과시했다. 국내 업체들은 디지털TV 분야와 디지털 디스플레이 분야, 인터넷 가전 분야 등에서 일본이나 유럽, 미국 업체들과 비슷하거나 한 차원 앞선 수준의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는 정보가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내 업체들은 그동안 매우 효과적으로 대응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제품이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해서 총체적인 경쟁력이 앞서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도 그랬듯이 하나의 완제품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가지의 부품이 우수한 품질을 확보해야 하며 특히 핵심부품의 경우에는 국산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개별 기업들이 투자하기에 어려운 대규모 사업의 경우에는 정부와 산업계 그리고 연구계 및 학계가 하나로 뭉쳐 역량을 최대화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개발 프로그램도 추진돼야 한다.
특히 대기업 중심에서 벗어나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직 계열화에서 탈피해 수평적인 협력관계를 유지, 기업들의 대응력을 키우는 것도 필수적이다.
최근 정부에서는 정보가전 육성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국가 차원의 정보가전 개발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산업자원부는 정보가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홈 네트워킹 구성을 위해 지난해 말 홈PNA 방식의 정보가전 개발사업을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가전과 컴퓨터, 통신을 하나로 묶어주는 NiPC 개발사업에도 착수했다.
이처럼 정부차원에서 정보가전 개발사업에 나서는 것은 국가적인 경쟁력 강화뿐만 아니라 정보가전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일반 기업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보통신부가 최근 산자부의 정보가전 육성사업과 같은 성격의 인터넷 정보가전 산업 육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겠다고 밝히고 나서는 등 정보가전 개발을 둘러싸고 정부 부처간에 주도권 잡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정보가전 개발사업에 정부 부처에서 많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비슷한 성격의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서로 중복되는 과제도 나오게 되고 실적을 내기 위해 불필요한 경쟁의식이 표현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정보가전 산업의 육성을 위해서는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보다 효과적으로 협력과 분담을 해나간다면 단시일내에 보다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기업들도 정보가전의 표준화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서로 협력함으로써 국내 업체들간의 경쟁으로 인해 외국 업체들이 득을 보는 어부지리를 주지 않도록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디지털 시대는 국경이 없는 시대를 뜻하기도 한다. 인터넷은 국경과 문화 그리고 종족을 뛰어넘어 전세계를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 정보가전 산업 역시 세계를 하나의 무대로 해서 좁은 국내보다는 세계 무대를 놓고 경쟁하게 될 것이다.
아날로그 가전 시대에 우리나라는 만년 2등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다가올 디지털 정보가전 시대에는 2등의 벽을 깨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그리고 연구계가 하나로 뭉쳐 무한한 잠재력을 현실화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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