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비평가나 미래학자 사이에서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말 가운데 하나가 「하이퍼세계(Hyperworld)」다. 현재의 사이버세계가 발전한 다음 단계의 사회가 바로 하이퍼세계다. 「프랑스 최고의 지성」 자크 아탈리의 「21세기 사전」에서 사이버세계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하이퍼세계를 지칭하는 옛말」로 풀이해 놓았을 정도다.
하이퍼세계와 연관된 용어들로는 하이퍼계급(-class), 하이퍼모던(-modern), 하이퍼산업(-industry), 하이퍼현실(-reality) 등이 있다. 해석은 다르지만 컴퓨터용어로 잘 알려진 하이퍼텍스트(-text)란 말도 하이퍼 패밀리의 하나다.
기존의 현실세계가 가상환경에서 시뮬레이션된 사회가 하이퍼세계다. 이 가상세계에서는 경제·정치·사회·문화 활동이 총체적으로 행해진다. 하이퍼세계는 21세기 사회, 특히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관차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한다. 가상경제의 수요가 실제 고용의 대부분을 창출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하이퍼세계는 사이버세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사회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다른 용어들을 살펴보자.
하이퍼계급은 하이퍼세계를 주도하는 계층을 말한다. 이 계급은 기존 사회구조 속에서 맨 꼭대기인 최상류층에 해당되는 부류다. 전세계적으로도 수천만명에 불과한 특수계층이다. 이들의 주 수입원은 특허·노하우·능력·창작·혁신 등에 관련된 이른바 문화적 배당금이다. 토지나 생산방식의 소유 또는 세습에 의해 형성되는 기존 상류층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당연히 이 배당금은 세습되지 않는다.
이 계급의 사람들은 시장원리와 자유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정신을 추구하지만 정치에 직접 나서는 것과 같은 공적 업무에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창조하고 즐기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네트워크에 접속 상태로 있는 것이 행동양식의 첫째 기준이 된다. 그러나 투표권을 행사하고 소비자단체를 주도하며 환경이나 지구문제를 날카롭게 인식하는 데는 매우 적극적이다.
쇠퇴중인 현재의 후기 산업사회와 대비되는 초기 미래사회의 산업형태가 하이퍼산업이다. 소프트웨어가 교사를, 보철기가 의사를, 네트워크가 상인과 금융인을, 복제이미지가 배우를 각각 대신하는 식이다.
하이퍼계층과 하이퍼산업의 역동적 동태를 사회학적으로 표현한 말이 하이퍼모던이다. 구체적으로는 디지털과 같은 정보기술의 산업적 활용으로 가능해지는 선진사회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식 사고의 조합방법, 디지털식 사고를 가진 영혼의 유목의 길, 혹은 인터넷의 풍요로움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방랑길을 제시해주는 것이 하이퍼텍스트다. 이런 상태를 총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이 곧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대비되는 개념의 하이퍼리얼리티다.
하이퍼세계는 그러나 단순히 경제활동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하이퍼세계에서는 자신의 복제인간을 만들어놓고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간다거나 원하는 복제파트너와 사랑을 나눌 수 있다. 하이퍼단체, 하이퍼종교(교회), 하이퍼민족 등의 등장도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지배계급이 그렇듯 하이퍼계급 역시 다른 계층의 생활방식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편으로는 이동성과 투명성을 갖춘 모범 엘리트층으로 비춰지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다수 소외계층과 낙오자의 좌절을 대가로 이뤄진 불평등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과정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신(新)부익부 빈익빈론의 출발점도 여기서부터라고 한다.
자크 아탈리는 이같은 하이퍼세계의 모순과 양면성을 메우는 최고의 묘약으로 사랑(박애)을 든다. 사회 전체를 박애의 유토피아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의 최고능력은 합리적인 사고와 조화로운 인간관계에서 비롯될 것이라는 대다수 미래학자들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대목이기도 한다.
세월이 더 흐르면 하이퍼세계는 뭔가를 만지고 맛보고 느낄 수 있는 3차원 환경으로 발전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설탕물이 물에 사르르 녹듯 현실세계와의 경계선이 무너져내리게 되는 세계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런 시대에 사랑이 설탕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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