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프롤로그

시스템통합(SI)은 국내 정보통신산업을 이끌어가는 기본 축이다. 도시정보화·국가재난관리·신공항·국방 등 사회간접자본(SOC)은 물론이고 민간부문의 경영정보시스템 구축에 이르기까지 SI사업자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분야는 거의 없다. 때문에 SI는 정보기술(IT)의 결정체이자 미래 정보화사회의 「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국내 SI산업의 현실은 이러한 막중한 역할과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덤핑수주와 부실공사 관행 등 첨단산업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후진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벤처열풍이 불면서 SI분야 고급 정보인력도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T분야의 종합적인 정보인프라를 제공하는 SI산업의 위상과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아직은 선진국과 비교해 기술수준과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사실이지만 수출 유망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크다.

국내 SI산업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점을 짚어보고 21세기 정보인프라 구축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을 조망해보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지식정보사회라는 세계적 추세에 부응할 수 있도록 경제개혁과 정보화를 촉진, 21세기를 맞아 세계 일류국가로 발전하는 출발점이 돼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새해 벽두에 밝힌 올해 국정운영 방향의 서두 발언내용이다. 이날 김 대통령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통합정보데이터 구축 등 4대 사업은 2001년까지 완료한다』는 구체적인 복안까지 발표했다.

과거 산업단지를 세우고 고속도로를 닦는 일은 대통령과 정부가 후대에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국가의 운명과 경쟁력을 좌우하는 인프라의 내용 자체가 달라졌다. 고속도로 대신에 초고속통신망이 필요하고 정보시스템의 효율성이 국가 제조업 전체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등 IT분야의 주요 기술요소들을 통합해 종합적인 정보인프라를 제공하는 SI산업의 위상과 중요성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SI산업은 이러한 높은 위상과 역할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정부마저 공공부문 사업에서 지속적으로 저가입찰을 유도하고 있고 SI업체들은 이를 「관행」으로 받아들이며 아예 무기력증에 빠져있다.

『국내 SI시장은 말그대로 복마전이다. 대형 SI업체들이 뛰어든 큰 규모의 프로젝트 가운데 잡음없이 시작하고 깨끗이 마무리된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기술력보다는 정치력과 덩치가 최고의 경쟁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한국 SI시장의 현실이다.』

정책세미나에 참석한 중소 SW업체 사장들은 국내 SI산업에 더이상 기대할 게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SI 관계자들은 묵묵히 고개만 떨군다.

이처럼 동종 IT업계에서도 SI는 사고뭉치이자 내놓은 자식으로 분류된다. 심지어 SI산업의 병폐로 인해 국가 정보화사업 전체가 멍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높다.

최저예산과 저가입찰, 그리고 이로 인한 과당경쟁과 부실관행. 국내 SI산업이 지닌 악순환의 고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하지만 건설분야에서 부실공사를 막을 뾰족한 대안이 없듯이 SI분야에도 정확한 해답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SI분야에 몸담은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관행은 더욱 심화되고 굳어만 가고 있다. 한가지 변한 게 있다면 과거에는 겁없이 뛰어들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두려워질 때도 있다는 점이다. 약속한 사업을 아예 수행하지 못하거나 이미 구축한 정보시스템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까 걱정이다.』(대그룹 SI업체 영업임원)

이러한 우려속에 최근 SI업계 내부에서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급변하는 IT산업 패러다임 속에서 현재와 같은 후진적인 모습으로는 더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SI업계 스스로의 현실적인 절박함도 깔려 있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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