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해커들의 "이유있는 침묵"

 새 천년 1월 1일. 한국정보보호센터의 바이러스 및 해킹 대응상황실은 Y2K상황실만큼이나 긴장감이 감돌았다. 밀레니엄을 알리는 이날 전세계 내로라 하는 해커들이 주요 정부기관과 업체를 대상으로 집중적인 해킹공격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했던 「해커들의 반란」은 조용하게 일단락됐다. 당초 해킹사고가 크게 일어날 것으로 우려됐던 2000년 1월 1일부터 4일까지 발생한 해킹사례는 오히려 일반 평균건수보다도 적은 6건에 불과해 센터 직원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외신에 따르면 주요 해커그룹은 지난달 여러 홈페이지를 통해 새 천년 첫주에는 「해킹을 하지 말자」고 촉구하는 메시지를 남겼다는 후문이다. 대표적인 해킹그룹인 「해커들의 천국(HIP)」은 실제로 1999년 12월 31일에서 새 천년 1월 2일까지 해킹을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Y2K혼란이 끝날 때까지는 해킹을 자제하기 바란다는 충언도 잊지 않아 관심을 끌었다. 특히 이같은 메시지를 남기는 방법으로 다른 홈페이지를 해킹, 다시한번 정보보호 담당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음은 물론이다.

 해킹은 인터넷시대에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모든 사물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고 해킹은 단연 손꼽히는 역기능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일부 악의적인 해킹을 제외한 대부분의 해킹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재미삼아 시도하며 범죄자라는 의식이 거의 없다. 자신의 능력을 검증해 보고자 하는 치기어린 행동이 대부분이다.

 사이버시대에는 전자상거래가 경제의 주축을 이루며 국가 안보의 관건은 정보보호에 달려 있다. 보안기술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력있는 일꾼이 필요하다. 도덕성을 갖춘 해커를 일꾼으로 키우는 것도 발상의 전환이다. 경쟁력 있는 해커를 곳곳에 포진시켜 정보네트워크를 지키면 그만큼 국가나 기업 정보보호 수준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같은 측면에서 보면 천년벽두에 보여준 해커들의 자제력은 의미가 적지 않다. 인터넷강국 「사이버코리아」를 위해 해커 「10만양병설」을 외친다면 기자만의 허황된 생각일까.

인터넷부·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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