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터넷 보급과 ERP시스템

 인터넷의 보급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인터넷을 통하지 않고서는 기업을 경영할 수 없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시공을 초월하는 인터넷은 기업으로 하여금 세계의 많은 경쟁자들과 만나게 한다. 여기에서 이기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은 기업에 있어 전세계 고객에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위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내외 기업들이 앞다퉈 인터넷에 기반한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깊이 인식해야 하는 사항은 인터넷의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데 있어 정보인프라를 갖춘 기업이 많은 선진국과 그렇지 못한 우리나라가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선진 기업들은 이미 오랫동안 정보화에 투자해 인터넷이 요구하는 실시간 대응체계를 어느 정도 갖춰놓았다. 선진 기업들은 원부자재의 조달에서부터 물류·운송·유통·판매·서비스에 이르는 일련의 업무 프로세스를 이미 합리화한 상태에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갖게 됐다.

 반면 우리 기업들의 업무 프로세스를 보면 아직도 체계화하지 않은 것 일색이다.

 원부자재 공급업체는 물론 유통업체와 동떨어져 업무를 진행하는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물류·운송과 같은 인프라가 아직 제대로 성숙되지 못한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이 도입한 인터넷 비즈니스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가 전혀 준비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프라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국내 기업의 낮은 전사적자원관리(ERP) 보급률이다. ERP는 기업의 정보시스템 구현에서 가장 핵심적인 정보시스템으로 특히 인터넷과 같은 열린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필수적이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기업들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ERP를 구축해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최근 미국 ERP시장이 침체된 것은 그만큼 ERP에 대한 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ERP를 도입한 기업은 10%도 채 안된다. 중소기업을 뺀 수치인데도 이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서 구축한 인터넷 비즈니스는 「모래 위에 지은 집」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ERP와 같은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은 국내의 많은 기업들이 인터넷 정보시스템에만 눈길을 돌리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일부 외국계 정보기술(IT)업체들의 그릇된 마케팅 활동에도 책임이 있다.

 외국계 IT업체들은 당장 기업의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인터넷 비즈니스의 구현에만 매달려 마케팅 활동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 우리 기업들의 관심은 ERP와 같은 인프라 구축보다는 인터넷에 기반한 정보시스템 구축에 집중되고 있다. 심지어 기업들의 정보화 투자 우선 순위에서 ERP가 인터넷에 밀리는 일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는 기업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기업들은 다가올 미래에 대비해 인터넷 관련 정보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필요한 인프라가 무엇인지를 모른 채 마치 유행처럼 인터넷 시스템만 구축하려 든다면 정작 실효를 거둘 기업은 거의 없다고 본다.

 인터넷에 대한 기업의 지나친 관심은 ERP 공급업체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ERP업체들은 올초까지만 해도 부진한 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해 인터넷을 내세웠으나 이로 인해 ERP에 대한 관심을 시들게 만들었다.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ERP에 집중돼야 할 수요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ERP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업무관행의 개선, 협력사 및 고객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등 국내 기업들이 명실상부한 인터넷 비즈니스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선결과제가 산적해 있다. 국내 기업들이 인터넷 전자상거래의 성공사례에 대한 관심의 몇 퍼센트만이라도 이를 뒷받침할 조직 및 정보시스템의 개선에 돌린다면 몇 년 뒤 그 결과물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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