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기업계는 지난해 IMF 한파로 인한 국내시장의 급격한 위축과 원자재가격 상승, 새로운 기술개발의 미흡 등 삼중고에 시달렸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롯데캐논·코리아제록스 등 주요 복사기업체들은 지난해 전년대비 무려 40%나 줄어든 심각한 내수시장 위축현상에다 환율인상으로 야기된 20%에 달하는 주요 부품가격의 폭등현상 등으로 사상유례 없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이에 따라 새로운 기술개발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야 했다.
복사기업체들이 최근 불황타개 전략으로 부품 공용화 및 국산화, 생산성 향상, 기술교육 강화 등 다양한 대책을 수립해 올들어 적극 시행키로 한 것은 이런 점에서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부품 표준화 및 공용화 사업은 정부가 지난 97년부터 자본재 표준화계획의 일환으로 역점을 두고 추진해 왔던 사업이지만 복사기업계가 뒤늦게나마 이에 적극 동참하고 나선 것은 복사기의 수입선 다변화 품목 해제에 대응한 국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특히 복사기 관련부품의 수입대체로 영세부품업체의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복사기 제조업체들이 이처럼 의욕적으로 추진키로 한 부품의 공동설계·개발·구매를 추진하는 부품공용화사업이 품목선정에서부터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난항을 겪으며 표류하고 있다니 안타깝다.
그동안에도 부품공용화사업의 추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어느 업체의 설계방식을 채택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이는 자사의 기존 설계방식을 버리고 타사의 설계방식을 도입, 제품을 생산할 경우 막대한 시설투자비가 추가로 소요되는데다 복사기사업을 자칫 경쟁업체에 의존해야 할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품별로 각자의 설계방식을 채택하도록 힘겨루기에 치중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부품공용화사업이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부품공용화사업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아 자사의 부품기술 및 부품개발에 소요되는 막대한 투자비를 줄이면서도 투자대비 신기술 개발성과를 높일 수 있고 공동개발에 따라 생산원가의 절감을 도모할 수 있는 등의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또 부품공용화사업은 각 복사기 제조업체간 소모적인 출혈경쟁을 지양할 수 있는데다 기존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에서 소품종 대량생산체제로 전환할 수 있고 일본의 제휴사와 부품업체를 통해 들여온 부품의 수입대체 효과도 거둘 수 있다.
특히 국내 100여개에 이르는 영세 부품업체들의 경쟁력 강화와 함께 이로 인한 부품 공급업체들의 안정적인 수요확보로 부품의 수급 불균형 해소에도 기여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복사기업체들로서는 당장 자사의 시설투자 증가분을 고려, 자사의 입장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업계 전체의 투자비 증가 내용이나 제품의 기술성·경제성과 사용빈도, 앞으로의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양보할 것은 양보하여 부품공용화사업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또한 특정업체의 기술이 채택됐을 경우 해당사는 자사의 관련기술을 경쟁업체에 적극 공개하고 이전토록 해야 한다. 이는 경쟁사의 기술을 채택했을 경우 자칫 자사의 복사기산업을 경쟁사에 의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각사가 막대한 투자를 해 독자적으로 개발·추진해 온 부품개발 및 완제품개발 관련기술을 경쟁사에 공개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공유를 통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길만이 현 시점에서 이 어려운 시기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국내 복사기산업은 90년대 들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IMF 한파로 산업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복사기업계는 이것이 외부요인보다 산업 하부구조 역할을 하는 부품산업의 경쟁력 취약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복사기산업의 침체원인을 구조적 측면에서 보면 고비용 생산구조 및 고부가가치 산업구조로의 이행부진 등을 들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허약한 부품산업 기반이 가장 큰 요인임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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