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80)

 김 회장은 홍 박사의 소개를 받고 나와 악수를 하면서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

 『용희 공부시키느라고 고생이 많소. 잘 부탁하오, 선생님.』

 그는 만나려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나와 길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그날 오후에 나는 홍 박사와 함께 김 회장이 경영하는 섬유공장을 둘러봤다. 차를 타고 다녀야 할 만큼 규모가 컸다. 섬유 관련의 모든 기기들은 일본에서 가져온 것을 사용했는데 공정이 거의 자동화되어 있었다. 섬유산업은 20세기에 들어선 지금은 시들었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경제의 주춧돌이었고 주요한 수출품이었다. 공장 기기들은 자동화되었으나 그 개별적인 것을 통합하는 것은 아직 사람의 손을 거쳤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그 전체 통제를 컴퓨터로 제어할 수 있으면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속도를 줄일 수 있고 자동화와 함께 생산에 드는 속도의 절약 만큼 제품 단가 경쟁력이 유리해지는 것이다. 자동화되기 때문에 인건비가 절약되고 생산 속도가 빨라져 같은 시간단위의 생산품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제품경쟁에 있어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막연한 공상은 훗날 공장자동화시스템을 개발한 나의 주요 생산품이 되었다. 필요에 의해 제품이 생산되는 것은 소프트웨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칙이었다.

 그 이후 나는 홍 박사의 집에 입주하게 됐다. 홍 박사의 제의로 아예 집에 들어가 용희를 가르쳤다. 하지만 나에게 할당된 시간은 그대로 유지했다. 나만의 시간은 여전히 필요했기 때문에 입주를 했다고 해서 항상 그녀를 가르칠 수는 없었다. 하숙비가 절약되고 가정교사 보수가 나왔기 때문에 나는 살판이 났다. 그때 책을 사고도 여유가 생겨 목포 집 어머니에게 돈을 부쳤다. 취직이 된 다음에 어머니에게 스웨터를 사서 선물로 보낸 일은 있지만 돈을 보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 돈을 쓰지 않고 도로 보내왔다. 나는 약간 화를 내면서 다시 그 돈을 부쳤고 아무리 모자 사이지만 남의 성의를 그렇게 무시해도 되느냐고 투정을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내가 보내드린 돈을 받았다. 그러나 몇 년 후 내가 사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어머니는 그 돈을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았다가 보태라고 나에게 내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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