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70)

 나는 여자와 데이트하면서 그녀의 다리를 만져 주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것은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도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는 나에게 말할 정도로 다리를 만져 주기를 원했다. 그것은 그녀가 발랑 까져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녀 역시 순진했고 그것은 그렇게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다리를 만져 달라고 하면서 데이트 경험이 없느냐고 물은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녀는 아마 전에 데이트한 남자가 상습적으로 다리를 만져 주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리를 만지지 않는 나를 이상하게 보면서 데이트를 안해 보았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은 스치는 바람 같은 것이었고 한 순간의 추억에 불과하지만 바로 다희를 만날 무렵, 나는 컴퓨터 엔지니어의 꿈을 막 키우려 했으며 잘 알아 듣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열심히 설명할 정도로 컴퓨터에 미쳐 있었다. 그리고 공장자동화 시스템의 필요성과 그 전망을 이미 감지하고 그녀에게 설명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존재는 내 운명에 중요한 획을 그어주고 있었다.

 그 남산 데이트가 끝난 이후 그녀와 헤어졌다. 안아 달라, 만져 달라, 키스해 달라는 그녀의 적극적인 성격이 나를 실망시켰고 여성에 대한 신비감이 깨졌던 것이다. 그것은 배신감으로 이어졌으며 실제 그녀가 싫어졌던 것이다. 바로 그러한 기회에 여자를 멀리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것은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헤어지는 방법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쌀쌀맞았다.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녀가 가져온 도시락을 먹지 않고 있다가 다음에 가져왔을 때 부패한 그것을 다시 돌려주었다. 그것으로 그녀와의 인연이 끊어졌던 것이다. 남산 순환도로의 데이트가 그녀와의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지독한 책벌레가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어려운 점은 내가 받는 말단사원의 월급으로는 고가의 원서를 구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것이다. 광화문에 있는 외국원서 서점에 들러 읽고 싶은 책을 여러 번 들었다 놓았다 하고 돌아설 때 내 마음이 왜 그렇게 아픈지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느 때는 서점에서 펴들고 읽었지만 워낙 양이 많은 원서라서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오늘은 2장만 읽고 다음날 들러 3장을 읽는 식으로 단계별로 책을 읽어 한 권을 독파한 일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자 서점 점원이 나만 들어서면 눈살을 찌푸렸고 점원들끼리 수군거렸다. 저 사람 또 왔네 하는 듯해서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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