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산 대형컴퓨터 개발 교훈

 국산 대형컴퓨터 개발사업이 사장위기에 처해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정보기술은 서울대 컴퓨터신기술공동연구소 주관으로 지난 95년부터 3년간 국산 대형컴퓨터, 일명 「엔터프라이즈 서버Ⅰ」을 개발했으나 올 들어 IMF 한파에 따른 영업부진 등으로 자금난에 봉착, 추가 투자를 꺼리는 탓에 제품 상용화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출연금 및 융자금·기업분담금 등을 포함해 총 1백67억원 정도가 투자된 이 대형 병렬컴퓨터 개발사업은 서울대 컴퓨터신기술공동연구소가 대형컴퓨터 기반설계 및 기술개발을 주도하고 삼성전자와 현대정보기술이 대형컴퓨터 병렬처리 관련기술과 노드개발을 각각 담당해 왔다.

 이 대형컴퓨터는 인텔 펜티엄프로 2백㎒ 중앙처리장치(CPU)를 8개 탑재하고 대칭형 멀티프로세싱(SMP) 노드 4대를 병렬로 연결한 32웨이 초병렬처리(MPP)방식의 고성능 시스템으로, 미국 HP나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최상위 레벨의 유닉스 컴퓨터와 맞먹는 성능을 구현함으로써 국산 대형컴퓨터 기술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대 컴퓨터신기술공동연구소는 지난 11월 27일 이 개발사업의 결과물을 발표하는 대형 병렬컴퓨터 시제품 발표회 및 시연회를 열었으나 국내 경기악화로 인해 이미 개발완료한 기술의 활용이 어렵게 된 것은 물론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갖추지 못해 상용화하더라도 제한된 시장에서만 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국산 대형컴퓨터에 대한 상용화 부문이 난관에 부딪히자 「엔터프라이즈 서버Ⅰ」의 후속사업으로 총 7백90억원을 들여 착수할 예정이던 차세대 국산 대형컴퓨터 「엔터프라이즈 서버Ⅱ」의 개발마저 힘들게 돼 국산 대형컴퓨터 개발사업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아울러 산업자원부와 서울대 컴퓨터신기술공동연구소가 주축이 돼 개발한 이번 국산 대형 주전산기 사업의 장래가 불투명해지면서 현재 정보통신부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국산 주전산기Ⅳ의 후속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고성능 멀티미디어 서버(MSC) 개발사업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국산 중대형컴퓨터 개발사업은 앞으로 「중대형컴퓨터를 개발, 상품화하여 국내외에 기술력을 과시한다」는 명분뿐만 아니라 실리를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그동안 국가의 보호막에 안주하면서 제품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지 못한 채 아까운 국고를 낭비한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특히 외산 중대형컴퓨터에 비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애플리케이션과 한발 늦은 하드웨어 시스템 개발 등에 획기적인 개선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현재 제한된 국내시장에서만 공급되고 있는 국산 대형컴퓨터의 수요처를 대폭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의 모색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또 최근 들어 중대형컴퓨터 기술도 PC와 유사하게 미국 인텔사를 중심으로 점차 표준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세계적인 기술추세에 발빠르게 대응, 국산 중대형컴퓨터의 경쟁력 제고방안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중대형시스템의 기술이 표준화돼 있기 때문에 앞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국산 컴퓨터 개발에 집착하지 말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아이템을 선정해 외국 선진업체들과의 제휴를 통한 기술개발에 초점을 맞출 필요도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출혈경쟁을 지속해온 국내 중대형컴퓨터 업체간에 상호협력을 토대로 한 더욱 긴밀한 공조체제가 요구된다. 최근 국산 중대형컴퓨터의 가격경쟁력이 환율상승으로 말미암아 외산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따라서 상호협력체제만 구축되면 외국 중대형컴퓨터 업체들이 지배해온 국내시장에서 새로운 입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어려운 IMF 상황에서 국산 중대형컴퓨터 개발사업은 중도하차라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 위기국면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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