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65)

 여자와 연극구경을 하기 위해 학교수업을 결강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학교수업에 회의적이었던 나는 이 기회에 반란을 도모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맛있는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그녀에게 보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여자를 멀리 하려고 결심했고 그녀에게 다가가는 나의 마음을 억제하려 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당연한 것에 구태여 이유를 붙여가며 자기 합리화를 하려 했는지 모른다.

 『그럽시다. 다희씨를 만나는 일인데 까짓거 결강하지 뭐.』

 『어머, 영준씨가 그런 말도 할 줄 아네?』

 여자가 웃으면서 소리쳤다. 그녀의 웃음은 마치 흐느끼듯 컥컥거렸는데 웃음은 순수하고 맑았지만 듣고 있으면 성적인 충동이 일어났다. 내가 음흉해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여자의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욕정을 느끼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는 배용정도 언젠가 그녀의 전화를 받고 그 목소리를 말하면서 섹시하다고 했던 일이 있었다. 여자의 목소리가 미성이라고 해서 섹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말이 끊어질 듯 간헐적으로 토막이 나면서도 결코 끊어지지 않으면서 이어지는 애잔한 느낌이 그런 감정을 유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퇴근하면서 지하 다방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배용정이 한마디 했다.

 『대단한데? 최영준이 학교수업을 빼먹고 여자를 만나러 갈 만큼 발전을 했구만? 그 여자 맞지? 도시락 말이야.』

 여자가 여러번 도시락을 가져오고 나서 기술실 직원들로부터 도시락 또는 벤또라는 별명이 붙었다. 내가 대꾸를 하지 않자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번에 도시락 전화를 받으면서 목소리를 들었는데 죽여주더군. 그런 미성은 도장이 찍힐 때 죽여줄 거야.』

 나는 그의 심한 농담이 싫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자식, 순진하긴. 그 말을 했다고 얼굴을 붉히면서 피하는 것 좀 봐.』

 내가 사무실을 나올 때 등뒤에서 배용정이 지껄였다. 다른 직원들이 킬킬거리고 웃었다. 건물 옥상으로 올라온 나는 바람을 쐬면서 거리를 내려다봤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가을 하늘은 맑았고 서쪽으로 기운 해는 바로 앞의 큰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어제 비가 내려서 서울 하늘에는 공해가 없었다. 나는 맑은 하늘을 보면서 생각했다. 나는 언제 엔지니어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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