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산의료기기 외면하는 국공립병원

 국공립병원이 외산의료기기 구입에 앞장서고 있다는 보도는 자못 충격적이다. 특히 내년 10월에 개원하는 7백20병상 규모의 일산병원과 2000년 상반기로 예정된 5백병상 규모의 국립암병원 등 국민의 혈세로 설립되는 국공립병원에 설치하게 될 의료기기의 95∼98%가 외산장비라는 사실은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산병원은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이, 국립암병원은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이다. 따라서 이들 병원이 외산 의료기기 구입에 앞장서는 것은 그동안 『내수기반 확충을 통해 국산의료기기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틈날 때마다 강조해 온 정부정책과 배치될 뿐 아니라 정부를 믿고 기술개발에 매진해 온 의료기기업계의 의욕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물론 지구촌이 하나인 글로벌시대에 그것도 인명과 직결되는 의료기기를 놓고 국적문제를 따지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IMF라는 작금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려면 내수기반 확충 이상 시급한 문제가 없다. 더욱이 자기공명 영상진단장치(MRI), 전산화 단층촬영장치(CT), 초음파 영상진단기, X선 촬영장치, 내시경, 마취기, 소독기, 레이저수술기, 환자감시장치 등 일부 품목의 경우 이미 세계시장에서 품질을 검증받았다.

 최근 서울대학병원 등 8개 국립병원장들이 국산 의료기기 구입 확대를 공동 발표하고 삼성서울병원·서울중앙병원·연세대의료원 등 대학 및 종합병원들이 국산의료기기 구입을 늘려 나가는 것도 그만큼 국산 의료기기의 품질 및 기술력이 세계시장에서 검증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설되는 국공립병원이 품질이 검증된 국산의료기기를 마다하고 외산장비 도입에 앞장서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본지가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신설 병원의 의료기기 도입문제를 놓고 이처럼 질타를 가하는 것은 최근 발표된 입찰사양서가 외국업체에 유리하게 만들어지는 등 모순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총 2백89억원에 이르는 국립암병원 제품사양서의 경우 『국가에 가장 유리한 입찰자를 낙찰자로 결정한다』는 낙찰자 결정방법에도 불구하고 국산 장비가 선정될 확률은 거의 없다.

 또 4백20억원대에 이르는 의료장비 도입에 나서는 일산병원도 자체적인 조사와 병행해 연세대 의대 교수들로 구성된 의료장비 분과위원회와 협의, 입찰사양서 작성에 나서고 있으나 기능성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어 국내 의료기기 제조업체들은 응찰기회를 상실하거나 설사 응찰에 나서더라도 낙찰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국립암병원 측은 『입찰 품목과 사양은 서울대의대 등 8개 대학 17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료장비 전문위원단에서 결정했다』며 『고가·특수 의료장비를 대상으로 하는 1차 입찰의 경우 내구성이 뛰어난 초정밀 장비위주로 선정, 국산의료기기가 많지 않으나 2백97억원으로 예정된 2단계 입찰에서는 국산 장비가 상당수 포함될 것』이라고 밝힌다.

 또 일산병원측도 국산 장비 도입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기기 특성상 국산을 강요할 수는 없으며, 만에 하나 의료사고라도 발생한다면 책임 추궁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국산기기 도입을 꺼리는 경향이라고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우려하는 것과는 달리 국산의료기기 품질이 크게 향상돼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전자의료기기 수출이 지난해 1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올 들어서도 초음파 영상진단기·심전계(ECG)·X선촬영장치 등의 수출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2% 늘어난 6천1백25만7천 달러를 기록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료기기 산업을 육성시키기 위해 정부가 많은 자금을 지원하는 등 민관이 힘을 합쳐 개발한 제품을 공공 의료기관이 외면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라는 점이다. 필요 이상의 기능을 가진 외산을 선호함으로써 병원의 적자는 물론 혈세의 낭비를 초래하는 국공립병원의 자성을 촉구한다.

 아울러 이들 기관을 감독·감시하는 정부가 국산의료기기 우선구매에 나서는 등 좀더 과감한 결단을 내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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