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발표된 5대 그룹의 자체 빅딜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국내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 문제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전자·정보통신업계에만 국한한다면 그간 구조조정의 타깃은 이동전화사업에 맞춰져 있었다. 좁은 국토에서 5개에 이르는 거대사업자가 난립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 또 그로 인한 과잉 중복투자와 경영 부실화의 파장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개입해서라도 2, 3개 사업자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다른 일부에서는 시장경쟁 속에서 자연스런 퇴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시각을 강조했다. 어찌되었건 통신산업 구조조정은 마치 이동전화가 그 처음이자 끝인 양 치부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왔다.
그러나 통신산업 구조조정은 이동전화분야가 전부일 수 없다. 오히려 관심의 사각지대에서 고사 직전까지 몰려 있는 교환장비나 무선호출에 대한 논의가 적어도 공론화 수준에 이르러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교환기를 포함한 장비의 경우 그간 국내 정보통신산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현재의 시장상황, 발전 가능성, 사업체들의 면면 등을 고려하면 이 부문이야말로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산업진로에 대한 심각한 논의를 펼쳐야 한다고 본다.
교환장비산업은 「한국통신 발주」라는 절대적 요인에 의해 지탱돼 왔다. 삼성·LG·대우·한화에 최근에는 현대까지 가세한 이 시장은 한국통신이 물건을 사주면 매출이 발생하고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 형편에 가깝다. 올들어 IMF 타격으로 한국통신의 장비 발주량이 급감하면서 시장 자체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같은 상황은 앞으로도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최근에는 제2시내전화사업자인 하나로통신이 등장, 숨통을 터주고 있긴 하지만 이 역시 목마른 국내 교환장비업체들을 해갈시켜줄 만한 수준은 아니다. 이 때문에 일부 업체는 눈을 해외로 돌려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벤더 파이낸싱」이 관행이 된 국제시장의 현실상 막강한 자금력과 기술력을 갖춘 외국기업을 당해내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과 일부 동구권에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 위안이 될 정도다.
이렇게 보면 교환장비산업은 철도차량이나 항공분야 등 현재 빅딜 논의가 진행되는 부문과 성격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한정된 내수물량을 두고 대기업간에 나눠먹기식 수주를 계속하다가는 자칫 산업기반 자체가 부실화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교환장비업계의 구조조정이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에는 반대한다. 정부의 강압에 의한 조정은 언제나 실패로 귀결됐다는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차제에 교환장비산업의 문제점과 바람직한 진로에 대해서는 분명한 검증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교환장비업계의 적나라한 현실을 끄집어내고 모두가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다. 교환장비산업은 내부에서 한국통신 얼굴만 바라보며 전전긍긍하고 정부 지원만 외친다고 다시 살아날 상황이 아니다. 고통스럽지만 공론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 나가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기는 바로 지금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업의 존폐기로에 서있는 무선호출 역시 무언가 획기적인 돌파구 마련이 절실하다. 다행히 무선호출사업자들의 경우 위기를 느끼자마자 자율적인 경쟁력 강화방안을 마련하고 무릎을 맞댄 채 향후 진로를 고민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현 체제로는 더 이상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구조조정은 피한다고 피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황은 너무 절박하다. 현 위기를 타개하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현명한 판단과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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