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정거래법 보완 급하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는 최근 전자업계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종업원에 의한 사업분할제, 이른바 분사(分社)작업을 촉진하기 위해선 퇴직종업원의 지분합계액이 총 출자금의 30% 이상일 경우에 일정 기간 기업집단에서 제외해주고 불공정거래행위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현행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의 이같은 건의는 전자업체들의 구조조정을 힘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글자 그대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현실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이같은 건의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들의 위장 계열사 및 부당 내부거래를 강력히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는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그동안 기업의 출자총액 한도를 정해 대기업의 무분별한 기업늘리기를 제한해 온 게 사실이다. 해마다 대규모 기업집단을 지정해 그룹 계열사의 상호출자를 금지하고 타 법인 출자총액을 순자산의 25% 이내로 제한하면서 대기업의 확장을 방지해 왔다.

 물론 이는 정상적인 경기상황에선 나름대로 대기업을 견제하고 중소기업의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IMF체제를 조기에 극복하고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비상시기나 다름없다. 기업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거래법에 기업의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면 기업의 경쟁력 제고라는 법제정의 근본취지를 살려 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또 이는 전자업체들의 실정만 고려해 공정거래법의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현행 공정거래법을 두고 각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단행하기에 어려움이 많다는 게 대체적인 현상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전자업체들이 정부에 기업집단 범위 및 불공정거래행위와 관련된 일부 조항을 개정해줄 것을 요구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IMF체제에 돌입한 후 우리나라 전자업체들은 구조조정의 하나로 사내조직을 별도의 법인으로 분리하는 작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삼성전자는 물류 부문과 광고판촉 부문을 분리해 토로스와 싸스컴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대우전자는 디지털피아노사업부를 중심으로 벨로체를 설립했다.

 또 현대전자는 PC사업 부문을 따로 떼어내 멀티컴을, LG산전은 자동창고와 물류설비 부문을 각각 분리해 대광산전과 한국수송기산업을 세웠다. 이밖에도 많은 전자업체들이 사내 비주력사업을 중심으로 분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대기업들이 한계사업을 정리함으로써 핵심사업 기반을 강화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현재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실업자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나 현행 공정거래법에 명기된 계열사 편입 및 부당 내부거래 등에 저촉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대기업의 출자금이 공정거래법에 의해 제한되고 있는 자본금의 30%를 넘을 수밖에 없고 분사를 하면서 필요없는 기존 생산설비 등을 분사기업에 저가로 양도할 경우 불공정거래행위 및 부당 내부거래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미 분사를 실시한 일부 업체들은 기존 생산설비를 저가로 양도하는 등 편법을 지원하고 있으며 일부 전자업체들은 분사를 중심으로 한 기업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해놓고도 이의 시행시기를 유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전자업체들의 분사와 관련한 건의는 자신들의 이익을 고려해 법의 원래 취지를 무너뜨리려는 것은 아닌 듯하다. 기업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퇴직종업원들이 기업을 설립할 때 퇴직종업원들의 지분 합계액이 총 출자금의 30% 이상일 경우 3년간 기업집단의 범위와 불공정거래행위 대상에서 제외해줄 것을 요구한 것에서 보듯이 분사형태로 설립된 회사가 IMF체제에서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출 때까지 유예기간을 달라는 것이다.

 정부는 기업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바라고 있고 실업의 최소화와 중소기업의 활성화를 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전자업체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여 공정거래법의 개정을 신속하게 추진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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