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합리적인 통신사업 구조조정

 최근 통신업계에 다시 불거져 나온 통신사업 구조조정에 대해 배순훈 정보통신부 장관은 「시장 메커니즘」에 따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그동안 관권을 앞세워 직·간접적으로 펼쳐온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하지 않고 시장 자율에 맡기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통신사업자로 인한 중복투자 부담과 초대형 외국 통신회사의 국내 진출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통신사업 구조조정은 쇠약해진 국내 통신사업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처방이다.

 특히 국내 통신사업자는 경쟁력이 부족하고 첨단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반이 미흡하다는 이번 「부즈-알렌&해밀턴」의 보고서는 앞으로 전개될 통신사업 구조조정 방향에 핵심사안으로 작용할 수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통부가 「부즈-알렌&해밀턴」에 의뢰해 마련한 「국내 통신서비스산업의 고도화를 위한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통신사업자는 고객만족을 위한 노력과 마케팅 역량이 부족해 향후 대외개방시 퇴출위험마저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정책적인 문제로 건전한 경쟁을 유도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규제나 제도를 통해 경쟁을 제한하고 있으며 주도적 사업자 역시 수익률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경쟁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우리가 통신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시장진입의 제한을 철폐하고 시내전화를 제외한 통신서비스 요금을 자유화하는 등 직·간접적인 정부 간섭을 줄여야 하며 주도적 사업자인 한국통신(KT)을 비롯한 사업자의 소유구조를 자유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민간기관인 FCC가 모든 통신정책을 수립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통신위원회의 권한과 기능을 대폭 강화해 시장자유화에 대한 감독 및 공정경쟁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이 보고서는 일부 내용이 주도적 사업자의 역량을 위축시키고 한국적 현실을 무시한, 미국적 시각이 지나치게 반영됐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수가 글로벌 경쟁시대에 부합되는 합리적인 자문으로 공감을 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정보통신사업 구조조정은 대체적으로 이 보고서의 평가를 기본바탕으로 해 서서히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보고서의 평가내용이나 배 장관의 시장자율에 의한 통신사업 구조조정만이 능사라고는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시장중심 철학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현재의 왜곡된 통신시장 구조도 따지고 보면 정부가 만든 것인 만큼 왜곡된 통신시장 구조가 어느 정도 정상화될 때까지 정부가 예외적으로라도 인위적인 조정을 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가 평소에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결정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등장하면 시장기능이라는 원론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은 결국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과 별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기존에 통신서비스를 분야별로 지나치게 세분하고 서비스 분야별로 복수 경쟁자를 도입했던 정부의 통신사업 구조조정은 애초 시작부터 잘못됐다고 본다. 지나치게 많은 사업자를 만들어 오히려 과당경쟁을 촉발시켰고 경쟁력만 약화시킨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통신사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 있어 가장 비중을 두어야 할 사안은 경쟁도입 자체보다는 국가 전체적으로 인프라를 어떻게 더 많이 확충할 것인가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개의 주요 통신사업자가 서로 다른 통신서비스회사를 인수·합병하는 수직적 통합(Vertically Integrated)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통신사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아닌가 한다.

 즉 현재의 주요 사업자의 자금능력을 고려해 KT 외에 2, 3개 정도의 사업자를 주축으로 다른 사업자를 합병하도록 유도한다면 시장경쟁이라는 대전제와 인프라의 확충을 통한 경쟁력 강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와 함께 합병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사업자의 출연금 부담을 낮추는 대신 사업자에게 인프라 구축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주거나 인프라 구축에 따른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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