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불이다.
김지호 실장은 순간, 광화문 맨홀 속에서 솟구치던 불길을 떠올렸다. 일본의 다나카 일가와 그 친구의 가족들이 믿던 종교가 조로아스터교라고 했다. 바로 불을 숭상하는 종교라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다.
『김 박사, 잠깐만요.』
김지호 실장은 빠르게 말을 하고는 깨끗한 종이 하나를 찾아 금고를 닦기 시작했다. 그랬다. 금고 앞쪽의 한 곳에서 검게 그을음이 묻어 나왔다.
『김 박사, 여기요. 여기에 불을 대봅시다.』
『불이요?』
『그렇소. 이곳에 열 감응장치가 되어있을 것 같소. 열을 받으면 기계적으로 동작하는 바이메탈 스위치요.』
김지호 실장은 자신의 라이터를 켜 그을음이 묻어 나오던 곳에 댔다. 잠깐 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딸깍. 어느 정도 열이 가해 졌을 때 금고가 열렸다.
『됐소. 열렸소. 무엇이 들어있는지 봅시다.』
금고는 깨끗했다. 단 한 장의 종이가 놓여 있었다.
『좋은 게임이 되길 빌겠소. 당신이 찾는 숫자는 뒷면에 있소. 건투를 빌겠소.』
김창규 박사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곳으로 침투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인가? 대단한 친구다. 자신이 이곳에 와서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 것도 알고 있다. 졌다.
『김 실장, 우리가 졌소. 이 친구 대단한 친구요. 우리가 이곳에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우리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소.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지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요. 우리가 졌소.』
『김 박사, 어쨌든 일본의 통신망으로 침투는 가능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소. 그 친구가 알려준 주파수를 활용한다면 즉각 일본의 통신망으로 침투가 가능할 거요. 그리고 그 친구, 대단한 친구요. 이번 사고를 완전범죄로 만들었소.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도 정확히 알고 도와주고 있소. 우리가 졌소. 이번 게임은 우리가 진 것이오. 어쨌든 경이롭소. 이번 사고를 일으킨 범죄와는 별도로 찬사를 보내고 싶소. 우리가 졌소.』
『김 박사. 아니요,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소. 그 친구가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했소.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소.』
김지호 실장은 종이 한 장을 넣고 금고 문을 닫았다. 통화 내역이 프린트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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