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460)

혜경을 위한 게임이었다. 결코 게임에 활용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나리오가 혜경을 위주로 작성되었다. 그러나 끝내 혜경의 마음을 잡을 수 없었다. 때문에 게임은 종료되었고, 결국 비극적인 주인공이 되고 만 것이다.

환철은 길게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몸을 일으켜 리모컨을 집어들었다. 버튼 하나를 누르자 천장의 화면이 열렸다. 또 다른 버튼 하나를 누르자 그 화면에 밖의 전경이 나타났다. 카메라를 통해 20층에서 바라보는 전경이었다.

환철은 리모컨을 통해 카메라를 아래 방향으로 움직였다. 1820호실. 그곳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1820호실은 어두웠다. 환철은 그 어둠 속에서도 혜경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혜경의 생활 하나하나를 이 카메라를 통해서 파악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 혜경의 생활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모든 것까지 이 카메라를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풀어헤친 머리카락으로 느껴지는 감촉.

탄력있는 둔부와 한 입에 들어오는 귓바퀴.

환철은 온 몸에 전기가 통하는 듯 전율하면서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이젠 움직여야 한다. 경찰서에서 자신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오게 될 것이다. 그 이전에 송도에서 처리할 일이 있다. 게임을 진행시키기 위한 일이다.

뿌아 뿌아 뿌아아아아 디주리두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환철은 길게 담배연기를 다시 빨아들이며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기댄 채 카메라의 방향을 도로 쪽으로 바꾸었다.

광화문 네거리. 광화문 네거리는 이제 화재의 흔적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많은 차량들이 헤드라이트를 밝힌 채 원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낮에만 해도 세워져 있던 고장수리중이라는 안내표지판도 치워져 있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것이다.

불길.

훨훨 솟아오르는 불길.

맨홀. 환철은 카메라에 잡힌 맨홀을 보면서 솟아오르는 불길도 함께 보았다. 맨홀에서 솟구치던 불길이었다.

그 불 앞에 조로아스터가 서 있었다. 다나카도 서 있었다.

조로아스터의 지팡이 위에 앉아 있던 독수리와 다나카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독수리가 그 불길 위를 날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 온 세상이 선으로 평정된 세상이 펼쳐졌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모든 것은 게임이며, 그 게임의 끝은 바로 3천년 전에 이미 조로아스터가 예언했다.

초인.

이제 그 초인이 등장할 때가 되었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