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459)

새로운 게임.

환철은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대면서 새롭게 시작되는 게임을 떠올렸다. 이제 주사위는 그들에게로 넘겨졌다. 그 게임이 얼마만큼 재미 있을지는 전적으로 그들의 능력에 달렸다. 자신의 컴퓨터 패스워드를 풀 수 있는 능력이라면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환철은 다시 한 번 길게 담배연기를 뿜어대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도전, 아니다. 아직은 아니다. 결국은 힌트가 제공되어야 한다. 아무도 그 힌트 없이는 게임을 풀어나가지 못한다. 맨홀화재로 시작된 지금까지의 게임의 흔적을 깨끗이 지울 수 있었듯이 그 힌트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게임은 시작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 힌트를 제공하는 일도 게임이다. 상대방이 게임을 풀어나갈 능력이 있을 경우에 그 힌트는 제공될 것이다.

뿌아 뿌아 뿌아아아아아 길게 디주리두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환철은 담배연기를 다시 들이마시며 혜경의 모습을 떠올렸다.

세상의 모든 혼을 추슬러 깨우는 듯한 디주리두 소리를 들을 때마다 혜경은 몸 전체의 감각을 불러내 환철에게로 다가들었다. 그러나 그뿐, 정신까지 환철의 몫으로 할 수는 없었다. 만일 혜경의 마음까지 잡을 수 있었다면 이번 게임의 양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게임을 넘길 수 없었다. 절대로, 절대로 다른 사람이 혜경의 몸에 손대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환철 스스로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게임이었다. 그것이 이번 게임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뿌아아 뿌아아아아 길게 디주리두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환철은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혜경의 몸을 떠올렸다. 생생하게,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던 몸 구석구석을 더듬듯 생생하게 떠올렸다.

손끝만 스쳐도 톡 솟아오르던 젖꼭지.

굽힌 등뒤로 만져지는 무방비 상태의 젖가슴의 감촉.

절정의 순간 두 팔과 혀, 두 다리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이 리듬을 맞추어 움직일 때 질러대던 괴성.

환철의 온몸으로 찡한 전기가 흘렀다. 사람의 마음은 1과 0이 아니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역시 가장 어려운 게임은 사람과의 게임이었다. 특히 혜경과의 게임이 더욱 어려웠다. 더 이상 게임을 진행시킬 수 없을 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게임은 혜경을 위한 게임이다. 모든 것은 혜경이 주인공이었다. 일본 아이들의 빚을 갚기 위한 것은 말 그대로 게임도 아니다. 혜경은 게임의 도구가 아니라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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