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457)

머리털 하나에서 발끝까지 모든 것에 반응했던 혜경.

환철은 문을 들어서자마자 들려오는 디주리두 소리에 혜경과 함께 한 그 순간들을 떠올렸다. 말 한마디 없이도 자신의 의도대로 서슴없이 반응했던 혜경이었다.

어, 아닌데. 이게 아닌데.

순간적으로 환철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게 아닌데. 환철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후 양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게임의 승패가 결정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음악의 시작 위치가 달랐다. 절정의 음악이 아니었다.

한참 뒤로 돌려져 있었다. 누가 들었다는 말인가? 이곳을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키박스를 뜯어낸다고 해도 도저히 열 수 없는 곳이 이 공간이다. 기계적인 접점에 의해 열리고 닫히는 것이 아니라 열에 의해 감응하는 센서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출입문을 열 수 있는 패스워드가 노출되어도 함부로 열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주파수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리모컨에서 나오는 신호의 주파수대는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다.

환철은 잠깐 동안 혼란을 느꼈다. 누군가 이곳으로 들어왔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렇다면 게임의 승패는 아직 결정나지 않은 것이다. 환철은 순간 할아버지의 모습과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사진으로만 본 어깨에 독수리를 얹고 다니는 다나카와, 그리고 지금도 일본의 NTC를 경영하고 있는 그 후손들을 떠올렸다. 다나카와 그 후손들이 아니었다면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자신도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환철이었다. 이번 게임은 그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위한 게임이었다. 지금까지 대대로 지고 있던 빚을 청산하기 위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다만 그들의 빚을 갚는 게임만은 아니었다.

또다른 게임, 새로운 세계를 열 자금을 위한 게임이기도 했다. 갚을 것은 갚고 확보할 것은 확보해야 했다. 그렇게 되었다. 한 차 가득 실려 있는 현찰도 떠올렸다. 이제 그 게임이 끝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누군가 이곳에서 디주리두 소리를 들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인가? 환철은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각 파일들을 확인했다. 누군가가 만졌다. 분명했다. 단순히 만진 것이 아니다. 모든 파일이 카피된 흔적이 있었다.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환철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다른 통신장비를 확인했다. 거기에도 쉽게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흔적이 있었다. 이것은 도전이다. 컴퓨터의 파일에 남겨진 흔적처럼 송수신장치에 남겨진 흔적, 이것은 또 다른 게임을 위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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