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벤처문화에 걸맞는 토양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조치법 시행령이 공포된 지 아홉 달이 지났다. IMF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효과적 처방으로 벤처 육성을 위한 장밋빛 전망을 정부에서 주도하고 있다. 한때는 첨단이라는 어두가 과학과 기술분야에 유행하더니 어느 틈에 벤처로 바뀌고 말았다.

벤처의 발상지로 지칭되는 실리콘밸리가 시작되었던 때를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지만 60년 전 스탠퍼드 대학에 재학중인 두 학생, 휴렛과 패커드가 지도교수 터만의 충고로 차고에서 전자계측기 사업을 시작한 것을 성공한 벤처의 대표적 사례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가 벤처문화를 꽃피우는 데는 거의 반세기 가까운 연륜을 쌓고 나서다.

벤처란 말 그대로 모험적 기업이다. 창업 당시에 모험적이라 함은 처음부터 실패의 위험을 전제로 하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벤처의 성공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성공했을 때 수익률은 박세리에게 투자한 삼성처럼 수백 배가 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제로섬의 법칙을 뛰어넘지 못하는 현실이다. 경마장에서 마권이 당첨되었다면 그 수익률이 엄청나지만 마권 자체의 기대값, 즉 평균수익률은 결코 마권 값에 미칠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실리콘밸리에서의 벤처 활성화가 미국 산업계에 재도약을 가능케 했고 이에 전세계가 자극을 받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벤처를 통해 기술기반이 강화되고 세계 산업구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게 되며 산업구조의 세대교체도 촉진시킬 수 있다. 고용이 창출되고 대기업과 벤처와의 보완관계를 통해 국가경쟁력도 높이게 될 것이다. 특히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전자정보통신산업이나 소프트웨어산업, 생명공학 관련산업 등에서의 기술혁신이 혁명적이다.

이런 배경이 과거 막대한 인력 및 연구비를 투입하던 대기업 형태의 산업구조를 차츰 밀도 있는 연구활동 중심의 지식집약적이고 모험적인 벤처의 중요성을 잉태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벤처의 활성화를 모색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벤처기업특별법을 만들어 자금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있고 대학에 창업클럽이나 테크노파크 등을 설치하는 육성지원 등도 벤처 활성화를 위한 필요조건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벤처의 속성으로 볼 때 필요조건만으로 벤처 활성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60년대 서울의 하숙집 주인들이 하숙생으로 미술대생을 선호했고 하숙비 대신 그들의 작품을 받는 예가 종종 있었다. 미술을 애호하는 듯하지만 하숙생이 세월이 지나 대가가 되었을 때를 위한 일종의 벤처캐피털이었다. 당시의 하숙집 주인이 후에 얼마나 수익을 올렸을지 궁금하다.

벤처가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토양이 있어야 한다. 실리콘밸리도 반세기의 연륜과 함께 쌓은 문화가 있다. 실리콘밸리가 갖는 고유의 창업문화란 창조적 파괴 또는 융통성의 재활용에 근거하며, 이에 따라 전통의 기업이 폐업되고 새로운 기업의 창업과 함께 자본과 아이디어 인력이 다시 모인다는 것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IMF와 함께 부실채권으로 금융계가 강타당했는데 어떻게 벤처캐피털이라고 투자의 모험을 할 수 있겠는가. 제도적으로 대응하려 해도 무리수가 따를 수밖에 없다. 실패와 변절에 대한 관용, 변화에 대한 열정과 적응, 그리고 다양성의 모색과 이해가 실리콘밸리의 문화적 요소라 하는데 이는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잠재력을 요구하며 단시간에 배양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업의 목표설정이 되었다고 해결방법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나 미국 모두 벤처의 업종분포에서 전자, 정보통신분야가 46∼47%를 점하고 있고 21세기는 바이오테크가 주도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결국 문제해결의 방법론은 기초과학의 토대에서만 가능하다. 새삼스럽게 요구되는 것은 벤처창업의 분위기 유도나 자금지원뿐만 아니라 창업 아이디어에 따른 해결책을 찾아내는 기본적 능력을 배양하는 일이다. 대학에서 학부제나 입시제도 등의 변화로 교육개혁을 시도하지만 대학교육 이전 과정에서 창의력 배양방법이 간과돼서는 안된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하듯 벤처는 급히 육성해서 되는 것이 아니므로 후일에 꽃피울 토양이 되는 창업문화와 기초과학을 차분히 쌓을 때가 아닌가 한다.

<金秀重 대한전자공학회장,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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