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금융자료 "백업시스템"이 필요하다

최근 금융권 퇴출이 본격화하면서 퇴출은행 직원들의 업무인계 거부와 이로 인한 상호 자료교환의 불능 등 금융권의 업무마비까지 초래하는 비상상황이 벌어져 며칠간 수많은 은행고객들이 곤욕을 치렀다.

특히 금융의 전산화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전산실 직원들이 출근거부를 넘어 일부 시스템을 파괴한 흔적까지 나타나기도 해 상황은 매우 절박해 보였다.

퇴출은행 직원들의 충격과 분노 그리고 며칠간의 출근거부 행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산시스템의 작동방해 또는 파괴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전산망에 의지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한글로벌 네트워크시대에 전산망을 파괴하는 행위는 사회적 제 기능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따라서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반사회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같은 행동을 한 전산실 직원들이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저지른 일일 수는 있다. 그들이 단지 제한적 기능만을 배웠을 뿐 사회통합적 시각에서 망의 의미를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그런 이해도 가능할 수는 있다. 한편에서는 무언가 비리를 감추고자 하는 계산된 행동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남기도 하지만 일단 순간적 분노로 생각없이 저지른 행동이라고 접고 상황을 다시 살펴보자.

이번 퇴출은행 직원들의 출근거부로 야기된 고객들의 불편이 단지 불편 차원을 넘어 경우에 따라서는 기업의 생존이 순식간에 위협받는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그나마 큰 사고없이 진정되기는 했으나 이번 사태를 통해 금융권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에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이제는 차분히 따져볼 차례다. 일단 자신이 몸담았던 직장이 사라진다는 충격에 직원들이 극단적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했어야 하며 이는 앞으로 계속해서 진행될 각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필히 참고해야 할 훌륭한 교훈이기도 하다.

은행 전산망은 금융의 공공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통합적 기능을 소홀히 했으며 각종 금융자료들이 금융기관마다 개별적으로 보존, 관리되는 상태였다. 물론 금융결제원을 중심으로 일정 정도의 자료들이 상호 교환, 집중되고 있기는 하나 대개의 금융자료 관리는 개별은행의 판단에만 내맡겨진 채 금융자료 전반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백업시키는 기능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예금고객들의 잔고는 해당은행 전산실 자료가 출력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통장잔고는 많이 남아 있어도 카드인출만 계속된 껍데기뿐인 통장일 수도 있고 통장잔고는 얼마 되지 않아도 무통장 입금된 실제 잔고는 월등히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임시방편으로 수기통장 거래를 종용했지만 이는 실현 불가능한 지시에 불과했던 것이다.

일단 집합된 금융자료는 공공적 성격을 부여해야 하며 따라서 그 보관, 관리에 사회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그 중 하나로 검토할 문제가 개별은행 차원의 백업시스템과는 별도의 원거리 백업시스템, 즉 이번과 같은 비상상황에서 쉽사리 파괴되지 않을 또다른 자료 집합시설의 마련이다. 평상시에는 개별은행, 혹은 개인의 거래내용이 웬만큼 보호돼야 하지만 비상상황에서는 이같은 원거리 백업시스템이 거꾸로 고객보호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금융결제원 기능을 금융자료 보존 차원에서 좀더 강화, 전반적인 금융자료의 백업센터로 기능하게 할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만 해도 왕조실록을 4부씩 간행, 전국 4개 서고에 분산 보관시킴으로써 전란 등으로 인한 역사자료의 소실에 대비했다. 전란피해가 많았던 우리 역사 탓에 3개의 서고에 보관된 실록은 결국 소실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러나 여러 곳에 분산 보존한 덕에 그나마 전실되는 비극은 막아 보존된 1부가 조선왕조 5백년의 역사를 증언해 주고 있다.

어느 시대에도 비상상황은 돌출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자료는 그같은 비상상황에서도 보존 관리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하며 특히 공공적 성격을 띤 자료의 보관에는 사회적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 백업장비 구비와 더불어 자료보존의 책임을 맡은 종사원들의 엄숙한 사명감도 긴요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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