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428)

김지호 실장은 은옥과 통화를 끝내고 멀리 보이는 북한산 정상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안테나의 상태를 보아도 2020호실에 대한 의구심이 더하고 있었다. 어쨌든 김창규 박사가 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김지호 실장은 김 대리와 신 주임을 보내고 자신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은행건물 주차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한번 더 은행으로 들어가 볼까도 생각했으나 이미 진행된 사항을 조 반장에게 들은 터라 그냥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승민이 쓴한글을 읽어보기 위해서였다.

승민은 범인이 아니다. 승민을 범인으로 인정하기까지는 무리가 있다. 승민이 경찰서에 연행된 후에 각 은행에서 돈이 인출되었고, 돈을 찾아간 사람이 방조제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되었다면 시간적으로 볼 때 승민은 범인은 아니다. 하지만 계획적으로 경찰서로 들어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김지호 실장은 원고뭉치를 들고 주차장 밖으로 나섰다. 여전히 가을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은행 앞쪽에 설치된 지적표시가 된 곳으로 다가갔다. 원점. 광화문 네거리가 우리나라의 도로 원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이었다. 바로 나라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통신시설이 시작된 곳도 바로 이 부근.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곳도 우리나라 통신시설의 중심이 되는 제1호 맨홀이었다. 나라의 중심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김지호 실장은 의자에 앉아 원고뭉치를 꺼내들었다.

「맨홀」

제목이었다.

「통신대란」 첫번째 소제목이었다.

김지호 실장은 원고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먼저 광화문 네거리 맨홀에 화재가 발생하는 것으로한글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화재로 주요 기간통신망과 방송회선, 일반회선 등이 마비되어 일반전화는 물론 공중전화, 은행 온라인망을 비롯하여 교통통제시스템까지 마비되어 일대 혼란을 겪는 사항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어 있었다.

일반국민들은 광화문 네거리 도로밑 맨홀에 그토록 많은 통신시설이 설치되어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 사고로 일어난 사태에 대하여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김지호 실장은 승민의 원고를 계속 읽어 내려 갔다.

보통 내용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통신망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있는 듯했다. 맨홀의 구조, 특히 광화문 네거리의 맨홀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맨홀 속에 들어가 보지 않고는 절대 쓸 수 없는한글이었다.

김지호 실장은 등줄기가 오싹해옴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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