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425)

2020호실.

김지호 실장은 2020호실 앞에서 한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1820호실과 같은 형태의 출입문이었다. 키 박스가 있고, 그 바로 옆으로 차임벨 버튼이 있었다. 하지만 함부로 누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단한번에 모든 것을 파악하려면 주변상황부터 더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비상구.

2020호실의 좌측 바로 옆으로는 출입문이 있었다. 비상구였다. 옥상으로 올라갈 수도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도 있는 비상용 계단이었다.

김지호 실장은 그 비상용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섰다. 푸르고 높은 하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바람은 시원했고, 태양은 따가웠다. 옥상 한옆으로 놓여 있던 위성용 안테나. 어제의 방향이 아니었다. 안테나의 방향이 정상 위치에 있었다. 무주구천동 쪽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옆 신문사 건물 옥상의 대형 안테나 쪽으로 방향이 틀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정상 방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김지호 실장은 그 안테나에서 빠져나온 전선들을 자세히 살폈다. 이 안테나가 수신용 안테나인지 송신용 안테나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지호 실장은 잠시 몸을 일으켜 멀리 보이는 북한산 쪽을 바라보고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이미 지정된 번호를 선택하고 버튼을 눌렀다. 은옥의 전화번호였다.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정상적으로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던 휴대폰이 오늘부터는 평상시와 같이 이용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은옥. 벌써 3일째 집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아내.

사고가 나던 날, 오랜만에 식사 약속을 했지만 지금까지 발생한 일련의 사고들로 인해 식사는 물론 집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근무를 계속해야 했던 것이다. 김지호 실장은 신호가 가는 동안 1호 위성과 2호 위성의 지금 현황이 다시 궁금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정상궤도로 회복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은옥과 직접 통화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광화문 네거리 1호 맨홀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순간 위성의 자세가 흐트러져 모든 위성통신망에 장애가 발생하고, 위성 자체의 컨트롤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어졌지만 이제 정상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이었다. 만일 1호 위성과 2호 위성이 아직도 정상자세를 잡지 못했을 경우에 통제실에서 회선 절체와 회복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김지호 실장은 휴대폰을 든 채 멀리 북한산 정상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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