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환경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우리 수출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 각국의 경기침체에다 수출 경쟁국인 일본의 엔화가치 폭락, 나아가 중국 위안(元)화의 평가절하 가능성 고조 등 수출환경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에 따라 외환위기 이후 70%나 폭등한 원화 환율 덕분에 연초 반짝했던 수출신장세가 4월 이후 눈에 띄게 위축되고 5월에는 마이너스로 반전돼 우려를 더해주고 있다. 저가품은 아시아 각국의 수출드라이브로 가격경쟁이 심화돼 수출단가 하락과 이로 인한 채산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으며 수출 주력상품인 반도체의 수출단가는 1, Mbps분기 중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48.6%나 떨어졌고 가전제품도 하락률이 평균 38.5%에 이른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원화 환율 폭등으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여기에 수출단가마저 하락했는데도 우리 수출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주력상품의 부가가치 제고, 신상품의 지속적인 개발없이 환율에 기초한 가격 경쟁력만으로 수출을 확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같은 우리 수출구조에 무엇보다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엔화 약세다. 특히 반도체, 가전 등 주력 수출품목이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 전자업계로서는 엔화 약세가 가장 큰 악재다. 아직은 원화 하락폭이 워낙 커 우리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현재 달러당 1백40엔대를 위협하고 있는 엔화 환율이 1백50엔대까지 치솟을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특히 미국이 일본의 경제파탄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달러당 1백50엔까지 하락하는 것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쳐 초엔저 시대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엔화가 떨어질수록 일본은 수출부문에서 약세효과를 고스란히 챙길 수 있는 반면 우리는 수출입결제시스템 마비와 자금난으로 환율상승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해 그 피해는 생각보다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엔화 약세가 제품값에 반영될 2∼3개월 뒤부터 일본 수출제품의 잇단 가격인하가 예상되며 수출총력전에 나선 국내 전자업체들은 그간 누려온 원화 약세의 메리트를 잃고 일본과 버거운 경쟁을 벌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가전업계의 경우 그동안 원화 환율을 달러당 1천4백원대로 제품가격을 산정, 마진없는 수출을 해 왔으나 이미 환율이 1천4백원대까지 상승한데다 엔화 약세로 단가를 다시 한번 인하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일본 제품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대형 TV브라운관도 국내 제품이 일본 제품에 비해 현재 10% 정도 가격우위에 있으나 이번 엔화가치 하락으로 가격차가 상당히 좁혀질 전망이다. 올 초 달러당 1백26∼1백30엔을 예상했던 반도체업계는 엔화의 낙폭이 의외로 커지자 불안한 모습이 역력하다. 반도체 가격이 워낙 바닥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일본이 엔저를 무기로 저가공세에 나설 경우 장기 거래처 이탈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무역금융 결제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전자업체들이 자금난으로 수출호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엔화 약세가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만큼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무역시스템 정상화 등 수출여건 조성에 나서야 한다. 물론 정부도 긴급수출동향회의를 갖고 수출기업을 돕기 위해 내수진작과 금리 조기인하에 노력하겠다고 했다. 또 가용 외화자금 20억 달러와 수출입은행이 조달하는 외화자금 20억 달러 등 합계 40억 달러를 무역금융에 배정하겠다는 것은 수출기업으로서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다만 지금까지 보여온 것처럼 말로만 그치지 말고 조속히 관계부처와 합의해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특히 일선 금융창구에서 실행되도록 해야 한다.
전자업계도 엔고와 엔저 등 엇갈리는 바깥 변수에 일희일비만 할 게 아니라 신기술 개발과 기술혁신으로 수출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환율급등에 따른 메리트로 내수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밀어내기 수출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무리한 단가인하는 채산성만 악화시킬 뿐이다. 채산성을 높일 수 있는 수출제품의 구조전환과 마케팅 능력이 필요하다. 또 엔화 약세 등 외적 수출환경 변수에 대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생산비용을 개선해 나가고 장기적으로는 가격요소 이외에 기술 및 품질 경쟁력을 강화, 환율변동에 영향받지 않는 수출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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