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반장은 어제 메모해둔 키 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렸다. 조 반장은 어제 처음 이곳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사건 현장치고는 너무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치정에 얽힌 사건처럼 어떤 정욕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사건의 현장에서든 냄새를 느낄 수 있다. 남자만 사는 방과 여자만 사는 방,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사는 곳의 냄새가 달랐다. 이곳의 냄새는 여자 혼자서 지내는 곳의 냄새와는 조금 달랐다. 여자의 냄새가 그렇게 진하지 않았다. 여자 혼자서 산다고 해도 남자가 자주 드나드는 그런 곳의 냄새였다. 이런 냄새를 느낄 수 있는 것은 형사생활 하루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 누구에게 배워서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랜 경험에 의해 감각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며, 처음 현장에서 느끼는 느낌이 대부분 맞았다.
남자, 그것도 자주 남자가 드나들었을 때의 냄새. 윤이 반질반질 나는 테라코타의 손때처럼 남자가 자주 드나들었던 곳의 냄새였다. 조 반장은 그것을 처음부터 느낄 수 있었다. 외부로는 혼자이지만 자주 남자와 함께 지낸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대부분 치정에 얽힌 것들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여자의 육체와 함께 거액의 돈이 연계되어 있다. 이번 사건이 어떠한 형태로든 치정에 얽힌 사건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예측이 가능했다. 죽어있는 여인의 몸은 보통 여자가 아니었다. 조신하면서도 육감적인 느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잘 빠졌다는, 설령 그것이 남자들의 기준일지라도 누구나 탐낼만한 그런 완벽한 몸매를 갖추고 있었다. 그 육체때문에 최고의 희열과 최고의 저주를 동시에 감수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때문에 조 반장은 처음 이곳으로 여인의 육체를 보는 순간 단순사고이거나 아니면 아주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범행일 것이라는 양면적인 생각을 했었다. 50억. 죽은 여인의 단말기를 통해 송금된 50억원이 확인되면서 이제 매우 복잡한 구도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커다란 독수리가 한 사내의 간이 자라기를 기다리듯 그렇게 눈을 부릅뜨고 있는 그림 아래 테라코타가 자리하고 있었다. 젖가슴과 둔부, 그리고 앞쪽 두덩에 손때가 타 윤이 반들반들 나는 테라코타. 그리고 침대가 있었다.
여인이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 죽어있던 침대도 그대로 있었다. 컴퓨터와 대형 모니터, 그리고 그릇들이 차곡차곡 정리된 작은 주방, 마지막 속옷까지 정리되어 걸려있는 옷장도 그대로 있었다.
조 형사는 다시 테라코타를 바라보았다.
『강 형사, 이 테라코타에서 지문채취가 가능한지 좀 확인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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