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코타.
유난히 앞가슴이 크고, 둔부가 풍만한 테라코타.
젖가슴과 둔부가 반질반질 윤이 나는 것은 누군가 만졌다는 증거였다. 그것도 자주, 아주 자주 반복해서 만진 흔적이었다. 조 반장은 죽은 여인과 테라코타와 함께 독수리 그림을 떠올렸다. 한 남자의 간을 후비기 위해 기다리는 독수리. 벌거벗은 여인의 육체와 테라코타, 그리고 독수리가 겹쳐지고 있었다.
은행으로 들어섰을 때 빈 자리가 보였다. 어제 처음으로 혜경의 죽음을 확인한 직원 옆의 자리였다. 조 반장은 그 자리를 바라보면서 확인의 자리가 아니라 가상의 자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금융기관 내부의 직원에 의해 발생한 금융사고를 많이 접해 왔다. 전산망을 통한 실시간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건을 일으킬 수가 있지만 그런 사고들은 대부분 실명화해 있었다. 빈 자리가 곧 범인이었다. 돈을 불법으로 인출한다고 해도 범인이 연계된 단말기나 구좌가 금방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다른 사건과는 달랐다. 돈을 다른 은행으로 송금한 사람은 이미 죽어 있고, 그 돈을 찾아간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돈을 찾은 사람의 신원이 중국 연길에 사는 우리 동포라는 사실도 이 사건이 복잡한 구도로 전개되고 있는 것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빈 자리는 가상의 자리였다.
조 반장은 일동은행 직원들로부터 지금까지의 정황을 들었다. 예측했던 대로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죽은 여인과 바로 옆자리에서 근무한 현미라는 직원도 마찬가지.
조그만 단서도 제공하지 못했다. 조 형사는 한동안 여러가지 필요한 사항들을 알아보면서도 사건현장에 있던 테라코타의 형상을 지울 수 없었다. 반질반질 윤이 나던 유방과 둔부, 그리고 아랫도리의 두덩이 반짝반짝 어른거렸다.
『강 형사, 단말기에 관한 자료는 다 확인되었나?』
조 반장이 죽은 여인의 자리, 그 빈 자리에서 단말기를 시험하고 있던 강 형사에게 물었다.
『네, 확인결과 단말기는 이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저께 입력된 데이터는 이 단말기에서 작업한 것이 아닌 듯합니다. 본점 전산실로 들어가 확인해 보아야 하겠지만, 이 단말기에서 짧은 시간에 그 많은 데이터를 전송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미 만들어 놓은 파일에 의해 외부에서 작업이 된 듯합니다.』
『만들어 놓은 파일?』
『네, 그렇습니다. 시뮬레이션은 해봐야겠지만 일일이 손으로 작업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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