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교통문화의 구조조정

우리나라에서도 등록된 자동차가 이미 1천만대를 돌파했으나 교통문화, 특히 자동차문화에 있어서는 우리 문화라는 것이 없다. 결국 오랫동안 정착시키고 검증받은 선진국, 특히 미국의 교통문화를 흡수모방하는 것이 교통선진화의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라 전제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어떤 과도현상을 거치면 선진화된 교통문화에 이를 수 있을까. 실제적으로 교통문화의 주요과제는 안전과 소통이다. 그러나 안전을 추구하면 소통이 어렵고 소통을 위주로 하면 안전이 위협받는다. 안전과 소통 사이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설정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의 교통시스템에서는 컴퓨터 제어만으로는 안전과 소통 모두를 극대화할 수가 없다.

미국과 우리의 교통시스템은 하드웨어면에서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인 면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미국의 경우 시내도로가 바둑판 같은 구조이기에 일방통행이 가능하고 따라서 교통신호의 연동화가 잘돼 있다. 또한 네거리마다 신호등을 만들지는 않고 전방향 일단정지(All Way Stop) 방법을 쓰고 있다. 직진차량의 우선권을 인정하며 녹색등에서도 비보호 좌회전을 허용한다. "Yield" 표지를 우리는 "양보"라고 표현하지만 오히려 "승복"의 뜻이 강하다. "전방향 일단정지"인 네 거리에서는 방향을 불문하고 네 거리 진입위치에 그은 흰색선에 먼저 도착 정지한 차가 제 방향으로 제일 먼저 진행하도록 하는 운영체제다. 따라서 각 방향으로 한 대씩만 순차적으로 통과한다. 앞차의 진행에 줄줄이 따라 나가고 그래서 무조건 차머리부터 바로 집어넣고 통과하려다 흐름을 마비시키는 우리의 체제와는 근본을 달리한다. 비보호 좌회전은 안전을 위해 우선권을 인정하는 소통의 극대화다. "양보"는 본인의 의사지만 "승복"은 상대방에게 굴복함을 뜻한다. 결국 미국의 교통시스템은 철저한 우선권 인정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근래 대도시와 그에 인접한 중소도시 사이에서 일어나는 교통량 폭주를 막기 위해 8차선 이상의 간선도로가 많이 건설됐고 또 새로 건설되는 곳도 많다. TV프로 "이경규가 간다"에 등장한 도로도 그렇고 대구와 경산을 잇는 10차선의 고산국도도 그 예가 된다. 제한시속 70km를 지키기에는 유혹도 많고 심리적으로 불만도 생긴다. 예를 들어 고산국도의 경우 10차선의 연장 9km에 신호등이 25개가 있다. 인도건널목 신호등의 경우 대기시간이 40초이고 교차로의 경우 2분이상이 소요된다. 길이 넓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시간배정이다. 신호등에 걸리지 않고 달리면 8분도 안될 거리다. 신호등 때문에 생기는 지체를 가능하면 피하려고 자동차는 경주하듯 달릴 수밖에 없다. 소통을 위해 가능한 대로 넓은 길을 만들었고 길이 넓으므로 건널목에서는 신호등에 긴 시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대기시간이 길기 때문에 법규위반의 유혹뿐만 아니라 하나의 신호등이라도 빨리 통과하려고 과속을 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을 없애려면 신호등을 없애든가, 신호등의 연동화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과 같이 양방향의 넓은 길에서는 상행과 하행을 동시에 연동화하는 알고리듬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신호등 연동화를 이룰 수 있는 하드웨어적인 도로구조로 바꾸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즉 양방향 8차선 대신 상행과 하행 각각을 3차선 정도의 일방통행로로 만들어 상.하행선을 개별적으로 연동화하면 된다. 길이 좁으므로 건널목 신호 등의 대기시간도 20초 이내로 줄일수 있다. 일방통행의 연동화는 제한속도에 맞춰 작동되므로 운전자의 입장에서 지정속도를 지키는 것이 가장 능률적임을 알게 되고 결국 과속에의 유혹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어차피 구조조정 과정에서 과도현상을 피할 수 없다. 한국사람도 미국에서 운전하면 바로 미국법규에 순응하며 미국 교통문화에 적응하는 것을 본다. 이제는 교통시스템의 소프트웨어 측면을 고려해 하드웨어를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스 등을 통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운전자를 훈련시켜야 한다. 그래야 선진국형의 교통문화가 무리없이 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교통부문에서의 구조조정은 바로 이렇게 시작돼야 하고 지금이 그 시점이다.

<대한전자공학회장.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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