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벤처기업 지원을 위한 선결과제

기술이 결코 담보로 통용되지 못하는 현실을 타개할 만한 획기적인 대책이 14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벤처지원포럼 창립총회를 겸해 열린 정책세미나에서 제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중소기업청장의 벤처기업 창업 지원정책에 관한 기조연설을 비롯해 기술담보를 통한 벤처자금 조달방안,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 등을 주제로 해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는 기술평가기관으로서 기술신용보증기금 기술평가센터의 역할에 대한 상세한 소개와 더불어 기술담보증서 제도 도입이 검토되고 있음도 밝혀졌다. 담보의 범위, 유효기간, 손실보전내용 등 약관이 제정되고 기술담보증서가 발행되면 금융기관은 이를 토대로 벤처자금, 기술개발자금, 정보화자금 등의 대출을 해주도록 한다는 것이다.

IMF체제 조기극복이라는 큰 짐을 안고 출발한 국민의 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실업난 극복과 경제구조 개혁의 주요 수단으로 벤처기업 육성 의지를 강력히 표명해 왔고 또 각종 지원자금도 넉넉하게 책정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문제는 자금의 많고 적음보다 그 배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구조적 한계에 있었다. 은행창구에서는 가진 것이라고는 기술밖에 없는 벤처기업에까지 부동산 담보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규 창업 지원자금 3천억원, 기존 기업 벤처기업화 자금 1천억원, 외국인 근로자 고용대체업체 지원자금 3천억원 등 벤처기업이 쓸 수 있는 자금은 많으나 파이프라인 구실을 할 은행이 여전히 부동산 담보만을 요구해 아직까지는 그림의 떡으로 남아 있다. 그러다보니 벤처기업들의 눈에 은행은 자금을 공급받기만 할 뿐 풀 줄 모르는 블랙홀처럼 비쳐지고, 정부는 정부대로 애써 자금을 확보하고도 단지 생색만 내고 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형편이었다. 물론 기술평가능력이 없는 은행들로서는 불량채권 발생에 대한 우려 때문에 선뜻 기술만 믿고 대출을 해줄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은행의 기술평가능력과 이를 토대로 한 심사능력 강화는 현재의 왜곡된 금융구조를 개선하는 첩경이며 그동안 부작용이 거듭 강조돼 왔고 또 요즘 경제의 거품이 걷히면서 금융부실의 주범으로 떠오른 부동산 담보 위주의 대출관행을 바꿔 나가는 데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이는 또 기업의 담보용 부동산 확보경쟁에 쐐기를 박아 기업의 무리한 확장전략을 무력화시키며 전체적인 경제체질을 건전화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기술평가능력이 없는 금융기관에 자금이 배분되면 결국 이 자금이 여러 편법적 통로를 통해 전용될 우려도 있다. 기술평가능력 결여는 금융시장의 완전개방 이후 국내 금융기관의 경쟁력 약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현재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소위 살생부를 기술평가능력이 결여된 은행 및 금융유관기관에서 작성하는 데 따르는 업계의 불안도 그런 점에서 분명 타당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담보증서 제도의 도입, 추진은 올바른 방향설정이며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분명한 의지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 검토될 몇 가지 문제도 있다.

우선 기술담보증서가 은행창구의 책임론에 대한 우려를 덜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소신을 갖고 중소기업을 지원하던 금융기관 중간책임자들이 최악으로 떨어진 경제상황 속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한 관리기업 부도로 적잖은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같은 상황에 대한 보장이 필요하다.

또한 권한이 집중되면 각종 정실이 개입될 소지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정에 약한 우리 사회의 특성상 기술평가기관이 새로운 부정의 온상이 되지 않도록 사후 감사기능이 확실하게 마련돼야 한다. 그렇다 해도 물론 공정하고도 객관적인 평가의 결과가 나쁘게 나타났을 때의 관련자 신분보장은 필수적이다. 신분보장 없이는 무사안일만 초래, 평가기관이 옥상옥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장치는 결국 짜임새 있는 시스템을 갖춰 나가려는 의지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 외과적 수술이 필요한데 투약만 계속돼 온 이제까지의 각종 정책은 결국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한 한계 속에 나온 궁여지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제까지의 정책의지가 더 이상 실효성 없는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도록 짜임새 있는 시스템 위에서 제대로 기술평가를 해 나갈 때 벤처기업은 분명 우리 경제의 회생을 이끌어낼 견인차 역할을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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