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차장, 그렇다면 어떻게 처리를 해야겠소? 아직 본점에서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을 텐데.』
『먼저 행장님하고 협의하시지요. 그래야 전산실을 조사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알겠소. 직원들에게 외부로 말하지 말라고 하시오. 나는 본점에 들어갔다 올테니, 관련자료도 정리해 주시오. 어느 은행으로 송금되었는지와, 누구 계좌에서 얼마가 빠져나갔는지도 정확하게 파악해 주시오. 그리고, 현금을 인출한 은행도 파악하고 그 은행에 감시용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지도 파악해 주시오.』
지점장이 자리를 떴지만 은행 안은 침울했다. 아직 업무시간이 안되어 창구에 사람들이 없었지만 누구하나 섣불리 이야기하는 직원이 없었다.
현미는 자리에 앉아 바로 옆에서 강하게 향내를 풍기고 있는 꽃다발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프리지어.
그 향내가 현미의 생각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슬픔과 범죄에 대한 생경스러움, 그리고 현찰로 인출된 50억원의 쓰임새가 현미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그날, 혜경에게서 이상한 점은 느낄 수 없었다. 결혼할 남자친구와 그 부모님을 만나기로 하였지만 맨홀 화재로 전화가 불통되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고, 전산망이 오프라인으로 되어 조금 늦게 퇴근한 것 빼고는 평상시와 다른 점이 없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혜경은 출근하지 않았고,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이전, 혜경은 은행 바로 옆 창연오피스텔에 살면서도 그 사실을 숨겼고, 느닷없이 혜경의 단말기를 통해 50억이 타은행으로 송금되어 전액 현금으로 인출된 것이다.
자료를 챙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김 차장을 바라보면서 잠깐동안 망설였다. 어떻게 할 것인가. 형부의 존재를 알려줄 것인가. 현미는 혼란을 느끼면서 그 혼란의 끝에 형부 김지호 실장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현미는 형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형부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형부에게도 방해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현미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고 빠르게 전화번호를 눌렀다. 김지호 실장. 통제실에 없었다. 화재현장으로 나갔다고 했다.
화재현장? 바로 이 은행 앞이었다. 현미는 힐끗 밖을 내다보았다. 넓은 도로에는 평상시처럼 가득 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화재의 흔적은 도로 한가운데 맨홀 앞에 놓여져 있는 작업 표시판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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